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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마하기/생각 다듬기 & 팁

트럼펫 '실력'이란...?

by J.5 2022. 7. 10.

얼마 전, 어느 음악학원의 유튜브 채널에서 유명 음대의 실용음악과에 합격한 학생이라면서 올린 영상을 보았습니다.

음... 잘 붑니다. 저한테 하라고 그러면 못해도 몇 달은 걸릴 것 같아요.

그런데 속으로는 영상을 보면서 바로 '에이...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조금 갑갑해집니다.

왜 저 학생을 저렇게 연주하게 가르쳤을까?
어쩌다가 저런 연주가 입시에서 받아들여지는
좋은 연주, 잘하는 연주의 기준이 된 걸까? 

 

비방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학생도 재능과 열정이 넘치고, 학원의 선생님도, 심사한 교수님도 모두 잘 불고 잘 아는 훌륭한 분들이실 겁니다. 그래도 모든 분들이 한번 쯤... 아니 여러번 생각하고 또 짚고 넘어가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트럼펫 연주에 있어서 '실력'이란 무엇일까?

 


1. 운지와 아티큘레이션의 정확함

몇 해 전, 서울 선생님과의 레슨 도중에 제가 선생님의 잠깐 시범을 보면서 충격(?)을 먹었던 순간이 있습니다. 고음도 아니고, 난이도가 현란한 그런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어려운 것은 처음부터 그러려니 하죠 ㅋㅋ). 단순한 클라크 반음계 연습이었습니다. 제가 뭐에 놀랐냐면... 분명히 슬러로 부지런히 왔다갔다 하는 연습인데, 한음 한음이 마치 아티큘레이션을 넣은 것처럼 똑 똑 명확하게 떨어져 들리더군요.

그리고 언젠가, 선생님께서 툭 던지신 한 마디. "트럼펫은 이게 테크닉이야. 별거 없어."

위 두가지 일화가 같은 날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요는 트럼펫 테크닉 = 운지 라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운지. ※ 여기서 선생님이 주신 한가지 연습 팁은, 위쪽 밸브캡을 살짝 풀어서 밸브가 다 눌렸을 때나 올라왔을 때 '찰칵' 소리가 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트럼펫 교본을 보시면 각 운지는 밸브가 온전히 눌려있거나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저 자신을 포함해 많은 경우, 실제로 그 음이 있어야 하는 박자에 딱 그 음이 있는게 아니라 50%든 80%든 '하프밸브'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로 제임스 모리슨의 밥 리브스 인터뷰에서도 이것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과학적으로 분석해본 결과 저음과 고음에서 악기의 반응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운지와 아티큘레이션을 완벽하게 맞추려면 음역에 따라서 미세하게 그 타이밍이 달라져야 된다고 하더군요. (※ 플루겔혼의 느낌상으로는 저음에서 운지를 더 앞당겨 해줘야 하는것 같습니다.)

일전에 올렸던 라파엘 멘데즈 영상을 보면서도 그런 부분에서 참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강한 아티큘레이션은 취향의 문제라고 봐야겠지만, 적어도 그 '한음 한음의 또렷함'에 대해서 라파엘 멘데즈는 믿기 힘든 경지를 보여줍니다.

 

2. 음정의 정확함

그러고 보면 전주에서 활동하시는 준프로급 선생님께서도 맥주 한잔 하다가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외국에 잘 부는 사람들 있잖아... 솔로에서 막 멋대로 부는 것 같아도 그게 아냐. 한 음 한 음이 정확해.'

위 곡을 들으면서 놀란 이유도 비슷한데, 1:20 부터 시작하는 쳇 베이커의 보컬 솔로 프레이징이 소름 돋을 정도로 명징하더군요. 기본 조(key)에서 벗어나는 텐션음들도 정확하고, 흥얼거리는 듯 하면서도 한음 한음이 그의 트럼펫 연주를 똑 베어온 것처럼 깨끗해요! 이것은 애초에 쳇 베이커가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음상 자체가 굉장히 또렷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냥 뭐랄까, 구렁이 담 넘어가듯 후루룩 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사실 여기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정확함'이란 타이밍적인 정확함과 음정적인 정확함이 둘 다 들어간 것이지만요. 시간을 X축으로 놓고 본다면, 이 횡적인 개념에서의 정확함이 타이밍, 종적인 (Y) 개념에서의 정확함은 음정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참 취약한 부분인데... 선천적으로 타고나거나, 아니면 계속 연습하는 수 밖에 없더군요 😂 시향 선생님께서 조금만 음정이 어긋나도 지적하실 때마다 저는 뭔가 경이로움(?)에 빠집니다 하하... 아, 다만 그런건 있습니다. 연습을 계속 하다가 보면, 어느 소리를 내려고 할때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이 그 소리에 맞는 운지를 짚는... 그때는 스스로의 연주에 폭 빠지게 되더군요 :)

 

3. 음악성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물론... 음악성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건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부분이지만, 또 분명히 존재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 ~ 그 중에서도 뉴욕을 위시한 동부 ~ 에서는 재즈 솔로나 즉흥연주를 연습하기 위해 아이리얼프로(iRealPro)나 애버솔드(Aebersold) 같은 정형화된 반주를 켜고 연습하는 것을 지양하는 분위기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이유라는 것이 '연주가 살아있지 않다'는 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시간으로 교감을 주고받으면서 떠오르는 것을 연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한데 그 가장 중요한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쪽에서는 차라리 카피하고 싶은게 있으면 그 원본을 틀어놓고 그대로 따라서 연주하는 것... 그리고 채보를 해서 '악보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들으면서 그 소리와 느낌,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고스란히 따라하라고 하는 편으로 보입니다. 

작든 크든 밴드나 합주 경험이 어느정도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연주가 진짜 서로 교감이 이루어지고 모든 것이 깔끔하게 딱 맞을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 '나는 가수다'에서 BMK도 '아 이번 연주 진짜 세션들이랑 합이 너무 잘 맞았어서 좋았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때의 쾌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바로 위에 언급한 반주와의 일체화도 그렇고, 모든 것이 싱크로가 맞아서 하나가 된 느낌.

요즘 자주 듣고 가끔씩 따라 불기도 하는 빅토리아 톨스토이의 'Against All Odds'... 전 이런 걸 들으면 감동과 더불어 묘한 쾌감 같은 것을 느낍니다. 필 콜린스의 원곡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해석...! 극단적으로는 '클래식 빼면 다 재즈'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저 개인적으로 '재즈'란 것의 정신적인 정수는 이런 것 아닐까 싶더군요. 악보를 벗어난 수준의, 틀이 없는 자유로운 재해석이랄까요.

제가 번역한 영상들에서도 수없이 나오는 말이지만, 결국 악기 연주의 궁극적인 목표는 음악을 연주하기 위함입니다. 음악성이란 것을 기계적으로 분석하면 타이밍, 음정, 표현(아티큘레이션), 음의 셈여림 정도만 어느 정도 갖춰도 기본적인 토대는 갖춰지기 마련이기는 합니다. 마스터클래스 영상들 중에 간혹 1:1로 코칭해주는 부분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보시면 여기서도 이런 것들을 짚어 주지요. 호칸 하르덴베르거의 경우 아예 1:1 코칭 영상만 몇개 올라와 있기도 하구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말그대로 '기본적인 토대' 정도일 것이고, 비록 그 뒤로는 취향의 영역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장르를 불문하고 좀 더 개개인에게 와닿는 감성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끌어당기는 방향으로 좀 더 탐구하고 심취할 필요가 있겠지요. 모든 것을 다 잘할 필요도, 실질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가 3옥타브 대 연주를 못하거나 하지 않는 경우도 많을 것이며, 기술적으로 이견을 달기 어려운 윈튼 마살리스, 아투로 산도발, 호칸 하르덴버거, 알렌 비주티 같은 분들의 음악이나 감성도 입맛에 안 맞아 무관심한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클래식에서도 작곡가, 지휘자, 악단 별로 팬층과 취향이 다 갈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요.

 

4. 톤, 음색, 자신의 '소리'

위에 언급한 라파엘 멘데즈 영상에서 멘데즈 옹이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하지요: '트럼펫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톤의 순수함, 그 다음이 깔끔함이다.'

트럼펫에서 소위 '음색' 즉 소리의 문제는 누구나가 빠짐없이 1순위 요소로 꼽는 부분입니다. 동시에 이것 만큼은 누가 가르치던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바비 슈, 멜빈 존스... '너의 소리를 찾아라'고 하지요. 연습할 때 자기 소리가 정말 좋으면 가만히 한 음만 내고 있어도 기분좋게 심취할 수 있구요 :)

예전에 집안이 번듯한 한 선배의 결혼식에 간 적이 있는데, 당시에 1집을 막 내고 조금씩 활동을 시작하던 R&B 가수를 축가로 불렀더군요. 그 가수는 결국 대중적으로 흥행하지는 않았지만, 저도 들으면서 참 잘한다고 생각했었고, 평단에서도 '대중보다 뮤지션들에게 더 인정받는 가수'라는 등의 수식을 붙여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예식장에 들어갔는데 그 가수가 축가를 부른다고 하길래 "헉... 진짜?!" 하고 기대 반 궁금증 반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반주가 잠시 흐르고, 첫 소절 이런 것도 아닙니다. 입을 벌리고 '첫 음'을 딱 뱉는 순간... 그대로 입이 쩍 벌어지더군요. 저에겐 '소리'의 중요성에 관해서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순간입니다.

사람이 이성을 보고 본능적으로 판단하는 시간이 0.3초라고 했던가요? 누군가의 연주에 대한 선호가 꼭 100% 음색만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지만, 내 취향에 맞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지 않습니다. 더불어 그 사람들 각각이 비슷한 사람들도 있지만, 또 똑같지는 않습니다. 

쳇 베이커와 아주 비슷하지만, 또 아주 다르기도 한... 요절해서 아쉬운 토니 프루셀라.

느긋한 발라드부터 고음 속주까지, 단단함이 참 좋은 월터 화이트.

그 많은 고음 주자들 중, 저한테 (고음에 크게 관심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 처럼이라면 불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 짐 맨리.

그래서 트럼펫 연주자로서 제가 들었던 최고의 칭찬은 사실, '소리 참 좋네요' 입니다. 그 단순한 한마디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EBS 다큐프라임 - '음악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는가' 中

관련글 - '가장 좋은 스승은 자기 자신이다' by 바비 슈

 

가장 좋은 스승은 자기 자신이다 - 바비 슈

내가 학생을 가르치는 데에 있어 기본적인 목표는 그들이 자신의 연주 스타일과 문제 해결에 있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스승은 실질적

lotusbeagle.tistory.com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제가 그 합격생의 연주를 보고 아쉬웠던 점은 결국 '좋은 트럼펫 / 음악 연주'에 필요한 내적인 함양이 보이기 보다는, '악보를 빠른 페이스에 맞춰서 외우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의견이며, 학생 / 학원 / 교수 누구와도 논쟁을 벌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저렇게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기술적인 부분이 해소되고 나서야 표현을 신경쓸 수 있다'는 접근일 수도 있지요. 다만 '이게 잘 분다라는 건가?' 라는 의문이라던가... 현재 한국에서의 교육적 방향이나, 사회적 인식 같은 것이 그런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 저 영상을 보는 순간 문득 들었기에, 거기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주욱 한번 해 보았습니다.

악기를 연주하고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모두가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인지라 이번에도 글이 길어졌지만 😂, 다들 어떠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기술적인 기본에서부터, 본인이 좋아하는 '그' 소리, '그' 음악에까지! 무탈히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생각 있으면 함께 나눠 주시구요 :)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며, 또 다음 포스팅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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