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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마하기/스케일, 코드, 즉흥연주

재즈 즉흥연주 (임프로비제이션)에 대한 소고 #1

by J.5 2024. 4. 14.

#글을 한번 날린 관계로(...) 간략하게 적도록 하겠습니다.

'즉흥연주'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보면 태고적부터 누구나 자유롭게 하던 것이었습니다. 현대에 와서 고전음악으로 정형화된 클래식 음악 역시도 당대의 유명 작곡가나 연주자들은 즉흥연주를 자유롭게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구요. (유튜브 링크) 이건 인간의 (혹은 생물로서의) 가장 원초적인 음악의 발현이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연습하다가 무심코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손 가는대로 단순한 즉흥연주를 할 때가 곧잘 있고,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무심코 흥얼거리는 이름없는 곡조들도 전부 즉흥연주죠 :) 그렇기에 막연히 단어만 보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래도 여기서는 전문화된 분야인 재즈 즉흥연주 (Jazz improvisation) 에 대해 다루게 되겠습니다.

(이하 본문에서의 '즉흥연주'는 모두 재즈 즉흥연주를 뜻합니다.)

재즈의 알파이자 오메가... 이 분야 시조도 역시 루이 암스트롱 본좌 아니겠습니까?

즉흥연주를 시작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대체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하다는 점 아닐까 합니다. 망망대해에 조각배 하나 타고 덩그러니 떠 있는 느낌이랄까요.

즉흥연주를 익히는 방법론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가. 모방 중심의 연습
  • 나. 코드와 스케일 (이론) 중심의 연습
  • 다. 느낌 위주의 연습

모방 중심

요즘 말로 소위 가장 '근본 넘치는' 방식입니다. 재즈 중흥기의 대가들은 ~물론 이론적인 부분에 대한 연구는 크든 적든 어느정도 병행되었겠지만~ 이 방식이 가장 비중이 컸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예전에 다루었던 마빈 스탬의 이야기도 이 방법을 모태로 하고 있으며, 널리 알려진 클락 테리의 3단계 접근법 역시 이것을 기반으로 합니다:

  1. Imitate: 모방 - 따라해보고 카피해보는 단계입니다.
  2. Assimilate: 숙달 - 이 단계의 지향점은 12키 중 어느 걸로도 해당 솔로를 본능적으로 불 수 있을 정도의 숙련을 이야기한다고 하더군요. 우리 말로 하자면 완전히 '갖고 놀 수 있어야' 한다고 할 수 있겠죠 :)
  3. Innovate: 혁신 - 완전히 익숙해진 이 연주를 기반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단계.

그런데 이걸 솔로 전체로 하기에는 솔직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찰리 포터가 예전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몇 시간 동안이나 한 곡을 카피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올린 적이 있는데 (독자가 요청했다더군요. 지금은 영상을 내린 듯.) '아... 저렇게 잘부는 사람도 똑같구나' 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래서 이런 모방은 솔로 전체가 아니라 특정 마음에 드는 부분을 (= 릭 Lick) 한두 마디라도 집어서 하는 것이 보편적인 듯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걸 좀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즉흥연주 그거 결국 릭 외우는거 아닌가요' 라고까지 하더군요.

인스타그램의 'jazzlickdaily' 계정 (링크). 유튜브 채널에서는 반주 영상들을 올려놓는군요.

한가지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것이 있는데, 즉흥연주를 위한 모방(카피)는 채보보다는 귀로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들으면서 / 떠올리면서 반응한다'는 것이 중심이기 때문이지요. 채보를 하는 것은 단순히 적는 것이 아니라, 귀카피의 다음 단계 개념으로 이 솔로가 곡의 진행이나 코드와 관련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용도로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코드와 스케일 (이론) 중심

현대에 와서 즉흥연주를 '교육'하는 방식으로는 가장 보편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작 단계에서의 간단한 예시로는 각 마디에 쓰여진 코드의 음계들을 익히고 연주하는 것이라던지, 블루스 스케일이나 디미니쉬드 (Diminished) 스케일로 대충(...) 하면 된다는 것 등이 있습니다.

이런 지적인 접근도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있는지라, 나중에 가면 오히려 '푸른 바탕에 푸른 색을 또 칠하는 격'이라며 코드 톤은 일부러 피해가면서 연주하기도 하고, 어떤 코드나 진행이 주어졌을 때에는 다른 특정 코드나 스케일에서 음들을 가져와 연주하면 조화가 훌륭하다는 식으로 범위가 넓어지기도 하고, 근음은 리듬악기에 맡기고 리드 악기는 위쪽 3화음으로 연주를 하라던가... 참 무궁무진합니다.

이런 이론적인 접근에서 특기할 만한 방법은 '제한을 두는 것'입니다. 예전에 이 주제를 다룬 찰리 포터의 영상(미번역)을 참 인상 깊게 보았는데... 예를 들면 '이번에는 3화음과 5화음의 두가지 음만 사용한다'든지, '프레이징을 무조건 1박의 뒷박부터 시작한다'든지 하면서 스스로 제한을 주는 것으로, 오히려 이것이 더욱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시도를 가능케 합니다. 삶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지혜인 듯 하여 이따금씩 반추하게 되기도 하구요. (이 글도 '재즈 즉흥연주'가 아니라 그냥 '즉흥연주'를 다뤘으면 얘기가 밑도 끝도 없었겠지요?)

느낌 중심

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대로 연주를 한다는 것은 사실 즉흥연주의 궁극적인 지향점이자, 위의 모방과 이론을 총합해서 다다르는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여기에서는 방법론 중의 하나로 따로 분류하기 위한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는 반주에 맞추어 허밍 등으로 자유롭게 가락을 불러보고 그것을 악기로 옮겨보는 작업이 있습니다.

또 다른 개념으로 '패러프레이징 (paraphrase)' 이라는 방식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바꾸어 말하기', '다르게 말하기' 입니다. 즉 기본적인 멜로디를 바탕으로 하되 변주를 주는 것이죠. 원 멜로디와 유사성이 강하면 듣는 이에게 더 쉽고 친숙하게 다가온다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너무 비슷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즉흥연주라고 하기가 어렵겠지요? 이 패러프레이징이란 엄밀히 말하면 멜로디 자체가 상당부분 포함이 된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실제 프로들의 즉흥연주로는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위의 3단계 접근법으로 치면 모방 이후의 '숙달' 과정에 가깝죠)

찰리 포터가 '반짝반짝 작은별'을 예로 들어 모방-숙달-혁신 3과정을 보여주는 영상(링크)을 보면 다양한 패러프레이징 예시들이 나옵니다.

사실 즉흥연주나 솔로라고 하는 것도, 원 멜로디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그 의미가 퇴색되기 마련입니다. 자기 자랑이 되거나 무의미한 음들의 나열... 쉽게 말하면 맥락없이 딴 얘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어떻게 보면 모든 솔로 연주가 크든 적든 그 곡의 멜로디와 깊이 엮여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특히나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쳇 베이커라든지, 또는 스탄 겟츠 같은 몇몇 주자들은 이렇게 원 멜로디에 대한 오마주적 경향이 더욱 강하게 드러납니다. (오마쥬(homage)라는 단어 자체도 대상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체이스 샌본이 쳇 베이커가 왜 대단한지를 설명하면서 이런 '솔로와 멜로디와의 조화'를 예시로 들었는데, 시작 부분과 2:15~3:10 구간을 보시면 둘을 병행해서 연주해도 마치 듀엣곡인 것처럼 그 조화가 자연스럽고 유려합니다.

 

...실전에서는?

이번 글에서는 보편적으로 널리 알려진, 즉흥연주를 익히는 방법들에 대해서 언급하였습니다. 개념상 분류를 나누기는 했지만, 결국 실제로는 ~사람마다 비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위의 언급한 방법들을 전부 다 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번에 음대에서 재즈 앙상블 반을 겪어보니, 다른 사람들과 호흡하며 실제로 갖다박는(...) 상황에서는 저런 고오급(?) 지식들을 적용하기 이전에 훨씬 더 원초적으로 해결해야 되는 문제들이 있더군요. 그래서 글을 나누어 다음 글에는 좀 더 개인적인 체험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P.S.> 2주 전에 이 글을 수 시간 쓰다가 날려먹는 바람에 투고가 한 타임 누락된 점 사과드립니다. 글을 날린 멘붕에 더해 요새 일이 바빠져서 (저번 주말은 재택근무까지...ㅠ)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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