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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마하기/고음과 저음

저음과 암부셔

by J.5 2018. 2. 10.

한동안 녹음해보려고 연습하던 곡이 있습니다. 쳇 베이커 버전의 '섬머타임(Summertime)' 인데요, 한번 들어 보시죠:

솔로를 포함, 라인 자체가 복잡 난해한 곡은 아니기 때문에 그 부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짬짬이 연습하다가 슬슬 몸에 익어갈 때 즈음, 시험 삼아 녹음을 해보았는데, 맙소사... 멘탈이 풍비박산 났습니다. 부끄러워서 해당 녹음본은 올리지 않겠습니다만(...), 가장 큰 차이는 톤과... 무엇보다 아티큘레이션에서 확 나더군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마냥 편해서 잘 모르는데, 부는 사람 입장이 되고 나니까 들을 때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차라리 다음 mp3처럼 조금 빠른 곡이면 그럭저럭 넘어갈 만은 할텐데 말이죠.


Happy Little Sunbeam 테스트 녹음 (1절)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아 내가 입을 너무 다무는구나' 싶더군요. 주위에 '입술 구멍을 더 작게 만들어라' 라는 식으로 잘 얘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입술을 너무 닫아버리면 저항이 그만큼 생기기 때문에 항상 이 저항을 뚫으면서 소리를 만들어야 됩니다. '뿌앙~' 하는 식으로 소리가 나게 되고 부드러운 어택이나 아티큘레이션이 힘들지요. 채보용 프로그램 (Transcribe) 를 틀어놓고 천천히 조금씩 따라불어 볼 때에 이따금씩 소리나 표현이 비슷하게 되어서 피스를 입에서 떼고 거울을 봤을 때에도, 입술 구멍이 엄청나게 벌어져 있더군요.

사실 하루의 연습을 시작할 때에도, 처음부터 어떻게든 소리를 내려고 억지를 부리다 보면 입에 힘을 주거나 무리하게 닫기가 쉽습니다. 고음도 마찬가지로 충분히 입술이 떨릴 공간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꽉 다물면서 소리가 나지 않거나, 나더라도 굉장히 작게 (쥐어짜는) 소리가 나지요. 바람을 세게 혹은 멀리 불려고 하면 이미 입술은 알아서 더 오무라드는데 말이죠. 같은 구멍을 유지한다고 했을 때에는 오히려 더 벌려줘야 됩니다. '유연성' 역시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입술 간격은 최소한의 바람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즉 가장 쉽게 잘 떨리는 간격에 벌려두는 것이라고 봅니다. 숨 어택으로 최대한 작게 시작하는 연습 역시 같은 원리구요.

이 찰리 포터 영상들은 상당히 깁니다. 시간 되실 때 보시도록 하시길...^^;

연주자들 중에 어택을 하기 전에 혀를 낼름 하는 분들이 여럿 있는데 이것 역시 기본적으로는 1) 입술을 촉촉하게 만들고 2) 입/입술 사이의 간격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이해합니다. 루틴에 익숙해지면 혀 포지션 잡기도 되겠지요.

저음 연습이 좋은 이유 역시 자연스럽게 호흡을 내려놓기 쉽고 부드러운 입술의 간격과 버징 포인트를 찾아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음을 분다고 입을 확 바꾸지 않고 최대한 같은 틀을 유지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요즘 연습할때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들이 있어서 한데 모아보도록 하겠습니다:


8:52 - "마일스 데이비스는 처음에 저음 F# 만 확인해보고, F#이 잘 나오면 그날은 잘 된다고 했어."


존 패디스에게서 배우셨다는 간단한 고음 연습법인데,
한번씩 불때마다 저음 솔로 입술의 초점을 확인하고 잡아줍니다.


일전에 소개해드린 제라드 프레젠서입니다. 긴장을 풀면서도 세팅을 잡는 간단한 연습 중의 하나라고 하네요.
저음 F# 음정을 유지하면서 1옥 도까지 반음씩 갔다가 오는 연습입니다.
레가토 / 메조포르테 정도 / 돌아와서 마지막 F# 음에서 디크레센도 ~ 유지


1:15 ~ 1:35 - "우리가 입술을 떠는게 아니에요. 입술은 그대로 잡고 있고,
거기로 바람을 통과시키면, 입술은 제멋대로 (스스로 알아서) 떨립니다."

마지막 영상은 저음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아주 좋아하는 강의 영상입니다. '입술은 지들이 알아서 떨릴 뿐이다'라는 말씀이 머리에서 맴돌 때가 많네요. 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강박이나 긴장을 많이 덜어주는 느낌이랄까요? 약간 비슷한 느낌으로, 요즘은 맞는 호흡이 나갈 때에 '중심은 내 안에 있다'라는 자각이 들더군요. 소리내는 데에 급급하면 자꾸 신경이 저 앞으로 나가면서 목을 조이게 되는데, 갈수록 중심이 내 안에 있다... 라는 느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사실 예전에도 '소리를 만들어내는 원천은 배 안에 있다' 라는 식으로 생각을 조금씩 다졌었는데, 나팔이란게 참 돌고 도는 것 같아요.

제 깜냥에 개인적인 의견을 쓰는 것은 항상 조심스럽고 해서, 요즘 자주 생각하던 것들을 갈무리하는 형식으로 모아 보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면서도, 녹음 등을 통해 자가진단을 냉정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네요. 입만 벌린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니, 이번 글 하나만 가지고 모든 것을 커버할 수는 없지만, 생각해 볼 지점 하나 정도는 제시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얼마 전에 돌아다니다 미국 게시판에서 본 글이 인상깊게 남아서 ~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 마무리 글로 남겨놓고 이만 줄이겠습니다:

"잘못된 연습이란 건 없다. 다만 자기가 연습하는 대로 불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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