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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하라 히카리 (市原ひかり)

by J.5 2013. 1. 2.

이치하라 히카리. 1982년 12월 22일콩라인 도쿄 출생.


중학 입학시 취주악부에 가입하며 트럼펫을 시작하고, 도쿄의 센조쿠 음대[각주:1]의 재즈 과정에 들어가 하라 토모나오(原朋直) 밑에서 본격적으로 재즈에 입문. 아버지인 이치하라 야스시(市原康)가 프로 재즈 드러머이긴 했지만, 대학 전까지는 클래식 계통의 교습을 받고, 취주악부였던 만큼 빅밴드 쪽에 중심이 있었던 듯 하다. 아침 수업 전에 항상 복도에서 뮤트(약음기)를 끼우고 연습하고 있었고, 3학년 무렵에 돼서 즉흥연주가 빛을 발하게 되었다는 등, 상당한 노력파 기질이 엿보인다.


대학 재학 중인 2004년 야마노 빅밴드 재즈 콘테스트에서 솔리스트 상을 수상, 졸업과 동시에 앨범을 발매하고, 이듬해 뉴욕에서 녹음한 2집으로 재즈디스크 뉴 스타 상과, 3집까지 걸쳐 2년 연속 스윙저널 골든디스크 수상. 2008년 스윙저널 독자인기투표에서 트럼펫 부문 2위를 획득하고, 2010년 부터는 본인 이름을 내건 밴드를 결성해 두 장의 앨범 발매, 2012년 말에는 피아노와의 듀엣 앨범인 「Precioso」발매 등, 대학 졸업무렵부터 입지 구축까지 쉴새없이 달려가며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왔다. 초기부터 작·편곡 등 제작에도 관여하고 있었으니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상당히 화려한 아티스트일지도.


일본은 음악 시장 자체도 그렇지만, 특히 재즈에 관해서는 동양에서 독보적이라고 할 만큼의 위치에 서 있다. 학교에도 취주악부가 많이 있고, 어린 시절부터 재즈에 훨씬 더 접할 기회가 많은 고로 인재 풀도 상당히 넓지만, 색소폰에서의 코바야시 카오리(小林香織)나 야노 사오리(矢野沙織)같은 동년배들을 비롯해서 여성 주자들이 상당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펫 쪽에서는 유난히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치하라 히카리는 - 적어도 대중에게 있어서는 - 여성 재즈 트럼펫터로서 거의 유일한(?) 존재로 보이며, 개인적으로는 이런 특별한 환경 속에서, 피겨스케이팅의 아사다 마오처럼 '어느 정도는' 커리어가 궤도에 오르도록 버프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팝적인 느낌이 짙었던, 비교적 초창기의 모습. 후반에는 유려한 밥(Bop) 솔로를 들려준다.

미루어보건데 이후 히노 테루마사에게 턱과 옷차림 등에 대해 지적받았던 것이 이 시절의 모습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이치하라 히카리의 뮤지션으로서의 역량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엠넷 등지에서 그녀의 앨범들을 맛보기로나마 들어보면 상당히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고 (클릭 - 들으러 가기), 비밥의 중흥기에 일본에서 남달리 선호되었다는 블루 미첼(Blue Mitchell)의 명맥을 잇는 듯한, 깔끔한 프레이징과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그녀의 연주는 상냥하고 부드러우면서,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약간은 수줍게 물러서서 융화를 추구하는 느낌인데, 업계 동료들의 평가처럼[각주:2] 이것은 이것대로 그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마른 여성들이 쉬이 그렇듯이 그녀에게도 '미녀' 트럼펫터라는 수식어가 붙기는 하지만, 사실 이치하라 히카리의 외모는 남다르게 빼어난 편은 아니다. 이런 수식어가 어울리는 것은 네덜란드의 캔디 덜퍼(Candy Dulfer)나 상기한 코바야시 카오리 정도일까... *-_-* 무엇보다도 이치하라 히카리가 발산하는 고유의 개성은 담백함과 공손함, 수수함 같은 것들이다. 약간의 앳된 분위기도 가지고 있는, 곧게 자란 소녀 같은 느낌이랄까. 옷차림이나 몸가짐, 태도 등에서도 그렇고, 그녀의 음악에서도 그런 느낌을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일본 재즈 트럼펫의 거성 중 하나인 히노 테루마사(日野皓正)에게 "그렇게 해서 모델이라도 되고 싶은거냐, 히카!" 라고 일갈을 들은 뒤엔 일단 이름부터 정정해주고 연주할 때 힐을 신지 않는 등, 갈수록 치장 따윈 아무래도 좋게 되었다고. 묘하게 여성 색소포니스트들과 대조되는 부분인데, 이런 것도 악기에 따라 볼 수 있는 하나의 특징일지 모른다.[각주:3]


기실 아티스트로서 그녀가 예뻐보이는 것은 외형적인 것보다는 끊임없이 정진하는 모습 그 자체에 있다. 초기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주는 음악의 팔레트에 극적인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을 향한 그녀의 진지한 태도는 변한 적이 없는 듯 하다. 아직 잉그리드 젠슨이 보여주는 식의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기대하기엔 어려워 보이지만 (어찌보면 자기주장을 누르는 것 자체가 그녀의 한 스타일일지도), 일례로 좀 더 하드한 블로잉도 시도해 볼 생각이라고 하니, 앞으로의 발전상이 기대된다.


흐르는 듯한, 동양적인 서정미가 느껴지는...




  1. 洗足学園音楽大学. 「노다메 칸타빌레」의 촬영지라고도. [본문으로]
  2. "이런 트럼펫을 부는 사람은 없다" 라던가, "밴드의 사운드를 만들기 쉽다." 등. 출처: http://www.senzoku.ac.jp/music/school/course/jazz/graduates3.php [본문으로]
  3. 실제 검색해보면 같은 여성이고 재즈 연주자라 해도 트럼펫터들은 차림이 상당히 수수한 반면, 색소포니스트들은 좀더 화려하게 꾸민 느낌이 물씬 풍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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