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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펫 & 플루겔혼/나팔

고급 나팔을 찾는 이유와 초중급 나팔의 특성 - 첫 나팔 구입 / 업글에 관하여 #3

by J.5 2023. 7. 3.

첫 나팔 구입이나 업그레이드에 관한 마지막 연재글입니다.

1부 - 닥치고 추천. 그러나.

2부 - 나팔에 대한 이해 ~어떻게 볼 것인가?~

번외편 #1 - 초급-중급-고급 나팔의 차이

번외편 #2 - 악기론 - 크고 작고 무겁고 가벼운


지금까지의 글들을 읽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 기본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 물론 여러 면에서 고급 / 상급 모델은 비싼 이유가 있다.
  •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취향과 맞아 떨어졌을 때의 이야기이며,
  • 나팔의 기본적인 기능 면에서는 나팔마다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 따라서 스스로가 어떤 나팔을 찾는지 방향을 잡기 전까지는, 단순히 비싼 나팔을 찾는 데에 큰 의미가 없다.
  • 천차만별인 개개인의 취향에 따르는 것이기에, 최대한 직접 불어보고 고르는 것을 추천한다.

최근 ACB에 중고매물로 올라온 모넷의 라자 LT+. 솔직히 돈만 있었으면...+ㅠ+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좋은 나팔을 찾습니다. 사실 더 좋은 물건을 찾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제가 이 시리즈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커뮤니티 등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보이는, '밑도 끝도 없는' 나팔 추천 문의를 보며 느낀 답답함 혹은 안타까움 때문이었습니다. 두서없이 대뜸 자동차나 신발을 추천해달라는 글을 보는 듯한...?

또 한 가지 비슷한 심정이 드는 것은, '이번에 업글하면 이걸로 평생 가져갈 생각입니다...' 라는 식의 말들입니다. 물어보는 입장에서 그런 의도는 아니지만, '내가 이 분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싶기도 하구요? 😂 애초에 나팔이 어디 그런 물건이던가요. 개인의 취향이나 성향도 바뀌는 법이고, 시대의 흐름에 따른 새로운 모델들도 꾸준히 등장하며, 나팔이란 것 자체도 태생적으로 현악기처럼 수명이 긴 악기가 아닙니다. 이상적으로는, 이런 저런 모델들을 거쳐가며 겪어보는 것이 하나의 과정이자 즐거움이기도 하구요. 한 악기를 평생 가져가는 경우는, 사실 나팔에서 손 떼고 장농에서 묵히는 경우를 빼면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라거나, 여타 여건들 때문에 마음처럼 취미생활을 온전히 할 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런 경우들은 가슴이 아픕니다만 ㅜㅠ

그런데 한 편, 나팔 자체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이상적인 마음가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팔이 어떠어떠하면 그저 그런 줄 알고, 나는 나대로 주어진 것에 맞추어 내 연주를 할 뿐인... 이런 분들은 나팔을 이따금씩 바꾸기는 하지만, 뭐랄까... 합당한 이유에 따라 담담하게 바꾸지요. 나팔을 바꾸는 것 자체에 잘잘못이 있겠습니까? 남녀노소 실력고하를 떠나, 트럼펫이란 악기 (하드웨어) 자체에 관심이 있냐 없냐에 따른, 순수히 취미의 영역인 것이죠. 


다른 나팔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디자인적인 측면이나, 소위 '뽀대 / 간지', 혹은 나팔 자체가 가진 위상이나 가격표, 이미지, 유명 연주자 누구누구가 불었다더라 하는 내력 등, 모두 다 타당한 이유들입니다.

오늘은 이거 보면서 잠깐 침흘렸네요. 하악하악... 갖고 싶다 세르게이...(응?) ...제일 탐나는건 실력이네요 ;ㅂ;

그래도 가장 큰 이유는 이것 아닐까요?

저거라면 내가 하고 싶은 연주, 내가 내고 싶은 소리를 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약간은 막연하지만 간절한~ 희망과 기대감.

악기 기변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소리와 연주시의 느낌이라고 뭉뚱그려서 얘기할 수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쓰고 싶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기에...ㅜㅠ 최대한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소리 측면에서 악기는 [울림의 '틀']을 제공합니다. 그 안에서 어떻게 소리에 색을 입히고 모양을 만들어나갈지에 대한 부분, 즉 나머지는 주자의 몫이구요. 이 '소리의 틀'이란 것이 듣다 보면 어느 정도 감은 생기는데, 그럼에도 한 두 가지의 샘플만 듣고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녹음과 믹싱에 따른 차이도 있을 뿐더러, 그 특정 주자의 음색이 생각보다 더 강할 수도 있거든요. 연주시의 느낌은... 악기의 외관이나 제품설명, 사람들의 의견 등으로 어느 정도 유추는  할 수 있지만, 역시나 직접 불어봐야지 제대로 알 수 있는 부분이구요.

정답이 없는 문제이지만, 한창 배워나가는 시기의 주자에게 권해주고픈 '정도'에 가까운 길이 있다면, 저는 소리에 있어서는 먼저 그 나팔을 순수하게 울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공명이 있어야 한다'거나, '열려 있으면서도 꽉 찬' 소리, 혹은 '둥글게', '풍성하게'라고도 하죠?), 느낌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반응이 직선/직관적인 악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불다 보면 그런게 있는데... 공기 기둥이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고, 호흡이나 음역에 따른 저항도 굉장히 꾸준하고 일관적인 느낌을 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서 중간 중간에 관 크기가 바뀌는 스텝보어 디자인이라던가, 칼리키오 #2 파이프라던가... 인풋 값에 대한 아웃풋이 뭔가 직선적이지 않고 알쏭달쏭한 애들이 있거든요. 이런 식으로 반응이 직관적이지 않으면, 호흡을 포함한 주법이 어느 정도 완성된 상황이 아니라면 자칫 헤매기가 쉽습니다. 제가 그래서 아직도 헤매고 있나 봅니다 이 부분이 괜찮다면 크기가 조금 크고 작고는 극단적이지만 않으면 괜찮습니다. 슬로팅도 마찬가지로 너무 좁고 빡빡하게 꼽히거나, 너무 느슨하게 미끌거리는 것만 피하면 괜찮습니다. 이런 것들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중도적인 길을 말씀드리는 것 뿐이죠 🙂 이래저래, '유난한' 악기는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겁니다.

너무 어렵습니다 교수님.... ㅠ

초급~중급형 나팔의 특징

비교적 근래에 저가형 ~ 중급형 악기들을 불면서 '아 이래서 고급 악기를 쓰는 구나' 했던 부분들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얇고 가볍다

초중급 악기들이 얇고 가벼운 경향을 보이는 이유는, 익숙해지기 전까지 부담을 덜어준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보통은 반응이 잘 되고 울리기 쉽게 하는 장점이 있다고 보입니다. 다만 야마하 1335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론 음색은 아예 내다버린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력이 없었는데... 저는 초급용이더라도 어느 정도 이상의 준수한 사운드를 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소리가 매력적이지 않으면 감흥도 덜하고, 설령 나팔 자체에 흥미를 잃지는 않더라도 윗급에 대한 욕구만 커질 테니까요. 초중급 모델 중에 레드/로즈/골드 브라스 재질을 리드파이프나 벨에 끼워넣는 경우가 은근히 많은데, 이것도 어쩌면 그래서 그런것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로 카퍼(구리)의 함량이 늘어나면 무게가 늘어나고 음색도 어두워지지만, 반응 자체는 더 빠르다고 하더군요. 초보 악기더라도 이런 느낌에선 세세하게 다 차이가 날 수 있으니, 비교적 저렴하다 하더라도 역시 가급적이면 직접 불어보고 느껴보는 것을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 모든 제작사들이 다 얇고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초중급에 딱히 무거운 나팔은 없더라도 말이죠.

2. 길을 '잡아준다' = 표현의 유연성이 부족하다

개인적으로는 소위 '중급형' 정도의 나팔들에게서 느껴지는 경향입니다. 소리에 두께감도 있고 전반적으로 좀 그럴싸한 형태인데, 뭔가... 길을 딱 정해놓고 그렇게만 불리고 소리가 나도록 만든다는 느낌? 저는 고급형 나팔은 더욱 더 섬세하고, 특정 취향에 정교하게 맞춰져 있다는 식으로도 생각하는데, 돌이켜보면 그런 스타일을 막론하고 고급 나팔들에서는 한번도 이렇게 길을 잡는 느낌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어떤 나팔이든지 물리적 특성에서 오는 그 나팔의 '틀'은 정해져 있지만, 고급 모델들의 경우 그 틀 안에서는 얼마든지 내가 자유롭게 조절하고 표현할 수 있거든요. 어쩌면 이런 점이 취향을 막론하고 고급 나팔들이 왜 고급인지를 보여주는 차이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초중급 나팔에서 보이는 이런 특성은 어떻게 보면 반응이 둔하다고 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불어도 비슷하게 반응하고 비슷한 소리가 나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가이드를 잡아주는 느낌으로 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무디다'는 표현이 적당하겠네요.

3. 짜임새 - 헐거움/엉성함 혹은 단순함

이것 역시 모든 초중급 모델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지만, 위 (2번) 경우처럼 고급 모델들에게서는 기본적으로 보기 힘든 유형입니다. 말로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조금 어려운데, 가장 간단한 예시라면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독일 차량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단단하고 밀도높은 짜임새와 비슷합니다. 빈틈 없는 느낌이죠. 고급 나팔들도 불어보면 바람길이 컴팩트하게 꽉 차 있고, 어디 딴길로 새거나 손실되는 느낌이 없는데, 초중급 모델 중에는 이게 뭐랄까...  뭔가 차도 옆에 갓길이 있는 것처럼 헐렁하거나, 숭숭 구멍이 난 듯한? 느낌이 날 때가 있습니다. 외적인 만듦새나 조작감에서도 비슷한 인상인데, 이 경우는 티가 좀 더 나죠. 어딘가 좀 엉성하거나, 단순해 보인다던가.

예를 들면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품질 좋기로 유명한 대만의 모 제작사에서 만든 것들도 보면 이런 경향이 좀 있는 편이더군요. 품질 자체는 아주 좋습니다. 근데 뭐랄까, 디자인을 그냥 통짜로 쭉 쭉 뺀 느낌이랄까;


고급 나팔을 찾는 것은 누구나 당연한 것이지만, 적어도 막연한 것보다는 좀 더 명확히 그 이유를 생각해보고 싶어서 이번 글을 써 보았습니다. 위의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누누히 언급했듯이 사실 초~중급 나팔이나 고급 나팔이나, 기능적인 부분에서는 별 차이는 없습니다. 특히 음정같은 부분에서는 왼쪽 그림에서 보이듯 애초에 완벽한 나팔이 없고 (Pilczuk 리드파이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빨간색이 일반적인 트럼펫의 음정 경향), 너무 유별나지만 않으면 경향적인 차이 정도로 갈무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요새 로터스 트럼펫에서는 이 음정과 관련해서 실제 시연과 함께 유달리 강조하기는 하는데, 확실히 강점이 있는듯 하여 흥미가 동하기는 합니다).

나팔을 고르기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점 아닐까 합니다. 그날 그날의 컨디션도 다를 뿐더러, 그때까지의 익숙했던 주법이나 반응이 있어서, 그것과 비슷한 나팔이라면 바로 느낌이 오지만, 똑같이 좋은 나팔이라도 스타일이 다른 경우에는 '이건 뭔가... 뭐지?' 싶어지기 쉽구요. (굳이 익숙하지 않은 길은 피하는 것도 선택의 문제이기는 하지만요!)

많이 들어보고, 많이 불어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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