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켓을 통하여 커스텀 마우스피스를 일단 두가지 정도 테스트 해 보았습니다. 회전율이 한달 정도씩 걸리다보니 한달에 하나 정도네요. 기왕에 만드는 커스텀 피스이다보니 기준치를 높게 잡고 있습니다만, 생각보다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한번씩 테스트할 때마다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구요.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마우스피스 수치상의 숫자들이 생각보다는 영향력이 훨씬 적다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좀 더 피부로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림 규격의 허상
일단 바하 마우스피스들의 수치부터 한번 보지요:
그렇습니다. 2 사이즈부터 8 사이즈까지 내경이 .655로 같습니다. 웻지 마우스피스 사의 실측정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실제 내경을 재는 지점이 회사마다 다르니 전반적으로 더 작게 나온 것은 이해가 되지요. 그렇다고 해서 외경이 일괄적으로 작아지냐 하면, 첫 자료에 나와 있듯이 그것도 아닙니다. 다 제각각이지요. 빈센트 바하는 개념적으로 소-중-대 의 군락으로 마우스피스를 나누지 않았나 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측입니다.
현대적인 '상식'과의 괴리
크기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결론은 잠시 뒤로 미루고, 일반적인 크기 개념과의 차이를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영국 트럼펫터 분의 블로그 글에서 많은 부분 참조했음을 밝힙니다.
1938년도에 나온 바하의 마우스피스 매뉴얼을 보면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바하 7: 마우스피스 디자인 예술의 마스터피스. 풍성하고 꽉 찬 톤.
바하 10.5C: 최고의 올라운드 마우스피스. "불꽃놀이" (화려한/강렬한) 퍼포먼스를 위해. 많은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유명 밴드에서 사용 중.
왼쪽 페이지의 첫 줄에 보면 'Most in Demand'라고 써져 있습니다. 가장 인기가 많은 모델들이라는 거지요.
팝스 맥러플린의 마우스피스 가이드나, 예전에 번역했던 옌스 린드만의 언급 등을 보시면 바하의 1 시리즈 마우스피스는 일반적인 규격이 아니라 특수한 용도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듯 하다는 의견들이 있습니다.
변수는 물론 있습니다. 저는 1시리즈 열풍이 시카고 심포니의 아돌프 '버드' 허세스 씨가 자동차 사고로 더이상 7 사이즈 마우스피스를 못 쓰게 되자 옮겨간 뒤부터 시작됐다고 보는데, 지금은 이런 소리가 대세가 된 것이 현실입니다. 소리에 대한 컨셉이 달라진 거죠. 한 주자의 소회를 적어놓습니다.
두 개의 일화가 생각난다. 작년 LA의 콜번 스쿨 오디션에 한 참가자가 있었는데, 어려운 솔로를 훌륭하게 해 낸 뒤에, 엑섭트 연주를 하는데에도 그대로 밝고 좁은 소리로 (※작은 마우스피스의 소리로) 연주를 이어나갔다. 이 학생은 불합격 처리되었다. 그 소리가 말그대로 모든 패널들의 귀에 거슬렸던 것이다.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는 써 먹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다른 하나는 내가 뉴욕필에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였다. 나팔을 바꿔가면서 다른 엑섭트들을 불었는데, Bb 트럼펫으로 헬덴레벤을 연주하는데 실수로 3C를 끼운 것이다. 뭐가 문제였는지는 그 자리에서 바로 알아챘지만, 당연하게도 연주 도중에 멈추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대로 연주를 끝마쳤다. 심사위원들은 좀 더 '큰' 소리로 한번 더 연주해줄 것을 요청했고, 이번에는 1C를 꽂고서 나는 그 오디션을 쓸어버렸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 이전에는 코넷이 주를 이루었는데 Bb 트럼펫이 대세가 된 이유 역시도 바하가 디자인한 마우스피스들이 더 강렬한 소리를 내다보니 젊은 주자들이 그쪽으로 이동해서 그리 된 것 아닐까 하는 추론도 있습니다(출처: '어찌하여 코넷은 2등 시민이 되었는가'). 반대로 생각해보면 유럽에서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주욱 로터리 트럼펫이 중용된다고 하죠. 여담이지만 바하가 일정 시기동안 전 세계적인 유통망을 갖춘 유일한 회사였기에 바하 특유의 소리가 글로벌 표준이 되었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참고로 일전에 흥미가 동해서 산 브레슬마이어의 TP1 마우스피스를 한 전공생에게 넘겼는데, 담당교수에게 엄청 칭찬을 받았다고 해서 이번에 대량으로 주문이 들어갔습니다. TP1 규격은 내경~외경이 16.30mm~26.98mm, 미국식 인치로 환산하면 약 0.642~1.062 입니다. 단, 브레슬마이어는 원래 로터리 트럼펫의 소리를 추구하는 회사이고, 컵과 백보어 등은 제가 불어본 느낌으론 상당히 큽니다.
컵
여기서 컵 얘기도 잠깐 하도록 하겠습니다. 바하가 컵 크기에 대한 넘버링에 왜 알파벳을 C 전후로 사용했었는지를 몰랐는데, 흥미롭게도 이것은 사용하는 악기의 조(key)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더군요.
현 시대의 바하 마우스피스 매뉴얼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크고 깊은 컵은 악기의 음정을 내리고, 작고 얕은 컵은 음정을 높인다. 그러하므로, 마우스피스의 컵은 악기의 음정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연주자가 가진 암부셔와 공기의 지지(air support), 구강구조는 다양하기 때문에, 각 개인은 자신의 음정을 향상시키는 컵을 고르는 것이 좋다.
<중략>
미디엄라지 보어의 Bb / C 트럼펫이나 Bb 코넷을 부는 주자는 일반적으로 C컵이나, 가급적 그보다 조금 더 깊은 B나 A컵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 가지 예외의 경우는 극단적인 고음역대에서 계속 연주하며 밝은 소리를 필요로 하는 연주자들이다. 이런 경우에는 더욱 더 얕은 3D, 3E, 3F 나 5SV 등이 더 좋을 수 있다.
3C 컵이 7C나 5C에 비해 얕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부분적으로는 여기에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954년도의 매뉴얼에는 아예 이런 컵과 악기와의 연관성이 더 두드러지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C, D, E 컵에 대한 설명을 보면 아예 어떤 악기들과 어울리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어 놓았습니다.
다만 마우스피스가 음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단순히 컵만을 변수로 둘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컵이 깊거나 내경이 넓은 경우는 마우스피스의 길이를 조절해서 음정을 맞추기도 하지요. 베스트 브라스의 경우 이런 구조를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더군요.
마지막 단으로 넘어가기 전에, 컵과 쓰로트, 백보어가 주는 저항 역시도 부는 느낌에 크게 영향을 준다는 점은 미리 언급해 두고 싶습니다.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총체적인' 부는 느낌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 글의 초점은 림에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림의 느낌 차이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제가 오랜동안 의문스러워 했던 것들이 있습니다.
- 왜 GR 피스는 규격보다 크게 느껴지는가?
- 왜 마씬키위츠 바비 슈 림은 규격 (0.662) 보다 훨씬 작은가?
- 왜 밥리브스 림은 전반적으로 크게 표기되는가? '기능적으로' 바하 XX 모델과 비슷하다는 뜻은 무얼까?
- 내경 크기를 보고 마우스피스를 골랐는데 왜 느낌이 다 천차만별인가?
이미 짐작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결국 림의 느낌 차이는 림의 곡선이 어떤지에서 옵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많고 사람마다 개인차는 있을 수 있으니, 아래의 상세한 부분들은 어느 정도 감안 부탁드립니다.
림의 곡선을 대략 안쪽-중앙(고점)-바깥쪽으로 3등분 한다면, 실제로 입술이 '대고 버틴다'는 느낌을 주는 가장 큰 부위는 중앙에서 바깥쪽 까지입니다. 바깥쪽이 너무 높고(=평평하고) 넓다면 실제로 연주할 때에는 그전에 쓰던 근육을 못 쓴다던가, 입술을 너무 붙잡는다는 느낌을 줘서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제가 GR 림을 입에 가져다 댈 때 어디다 댈지 수시로 헤맸던 것 역시도 이 바깥쪽이 너무 매끄럽게 빠지기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GR의 E림은 제가 GR 특유의 느낌보다는 일반적인 바하 림과 가깝다고 생각한 림입니다. G림의 경우는 기본 림을 약간 넓게 잡아당긴 림인데도 불구하고 단차가 확 떨어지는 것이 드러나죠. 반면 안쪽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림의 고점이 어디에 위치했는지, 안쪽이나 바깥쪽과의 고저차가 얼마인지, 곡률이 어떠한지에 따라서도 림이 '넓다 좁다 (크다 작다)' 거나, '둥글다 평평하다'의 느낌이 많이 좌우됩니다. 사실 느낌상 중앙이라고는 하지만, 마우스피스 림의 고점은 보통 전체 곡선의 1/3~2/5 지점 정도에 위치합니다. 워버튼 피스가 규격보다도 훨씬 넓고 평평하다고 느껴지는 것도 전체적인 곡률이 크지 않고, 바깥쪽도 거의 수평으로 길게 빠지다 끝에서 스탑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모넷의 6사이즈를 불었을때 제가 한두치수 작은 다른 회사것을 불다가 불었어도 딱히 크지 않다 느꼈던 이유 역시, 림이 안쪽으로 약간 솟아올라 있는 형태이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인 바램이 있다면 마우스피스 수치를 기재할 때에 이 고점 위치도 같이 넣어주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고점에서부터 림 입구를 포함한 안쪽의 곡선은 ~흔히 바이트라고 하는 부분이 이쪽이죠~ 주의를 특별히 기울이지 않으면 체감상으로는 큰 차이를 못 느꼈던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형태적인 느낌보다는 실제로 연주할 때의 느낌이 어떤지를 좌우한다고 봅니다. 이쪽이 둥글면 입술 표면의 안쪽이 (구멍 부근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여유가 생기고, 날카로우면 딱 잡아주는 효과를 냅니다.
케이스 스터디를 조금 하자면, GR의 경우는 림 전체는 넓은 편이지만 안쪽도 바깥쪽도 상대적으로 둥글게 떨어지는, 어찌 보면 궁극의 라운드형 림 아닐까 싶습니다. 연주력과 유연성은 최고지만 림에 걸치는 느낌으로 고정하거나 기대기는 힘든?
마씬키위츠 바비 슈 림의 경우, 내경은 이상하리만치 큰데 비해서 (0.662) 외경은 상당히 작은 편입니다 (1.057~1.060). 캔스툴 마우스피스 비교기(Comparator)의 예전 버전에 야마하 바비슈 피스의 곡선이 있었는데, 이를 비교해본 사람들 사이에서 '그래프 보니 바하 3C랑 거의 똑같다' vs '아니다 불어보면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로 갑론을박이 좀 벌어졌었습니다. 연주할 때 림 안쪽이 물리는 느낌과, 옛부터 지금까지 마씬키위츠 바비슈 피스를 오래 불면 느껴지는 특유의 통증(?)으로 보아서 아마도 바하 3C를 기반으로 림 안쪽을 살짝 더 날카롭게 깎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돌고 돌아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결론은...
네... 답이 없습니다 ㅜㅠ
사실 마우스피스 선택에 관한 문제는 옛날부터 정답이 없는 문제라고 많이들 이야기했습니다. '실제로 대보고 연주해보기 전까진 모른다'라는 대전제는 그대로이지만, 이번에 여러모로 연구를 하면서 그나마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둘 지에 관한 것 아닐까 합니다. 곡선, 그 중에서도 고점부터 바깥쪽까지 이어지는 형태가 입에 댈 때의 느낌에 중요하고, 내측 곡선과 림 내경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눈에 띄는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연주력에 영향은 분명히 준다는 것.
실제 회사들의 경우에도 림 내경의 숫자를 크기로 표기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역시도 실제 측정치인지 아니면 바하처럼 느낌상의 크기를 환산한 표기인지는 갈릴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한 회사 내의 림 느낌이나 모델들 간의 크기 차이는 어느 정도 일관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각기 다른 회사끼리의 비교는 난해하지만 한 회사 안에서 크기를 바꾸는 경우는 비교적 안전함이 보장된다 하겠습니다. 어느 피스는 느낌이 어떻더라, 혹은 내가 어떤 피스는 이러이러했는데 비슷한 게 있을까? 같은 상대적 비교가 첫 질문으로 괜찮을 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에 드는 생각으로는... 림의 곡선은 그 마우스피스 회사의 철학, 또는 얼굴과도 같지 않나 싶습니다. 따지고 들면 컵 모양부터 블랭크까지도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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