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나팔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반 라아의 최고가를 새롭게 갱신한 오이람 라이트, 그 중에서도 2번 모델을 약 1주일 정도 테스트해 보았습니다. (I 과 II 차이는 벨 차이 뿐인 듯 합니다. 1번이 바하 37, 2번이 바하 72 스타일 벨입니다.)
사실 이야기를 너무 오래 묵히다 보니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하하...
반 라아(Van Laar) 측 사람들과는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명언을 하나씩 듣는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나팔을 새로 사겠다고 굳게 다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약간은 살까 말까 하는... 그마저도 갖고 있는 나팔 중 하나를 팔고 +200~250만원 정도 얹어서 어떻게 해보자 하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랬던 것이 어쩌다보니 모델도 마음에 들고, 마침 상황이 맞아떨어져서 눈덩이처럼 불어났네요 ^^;
통화하면서 얘기를 들어보니 반 라아에서는 1주일마다 사이클을 돌리면서 다른 종류의 나팔들을 만든다더군요. 통화를 하는데 마침 그 주가 오이람 나팔들을 만드는 주간이라는 겁니다. 다음번 사이클은 한달 반쯤 뒤에나 돌아올 거라고... "와, 타이밍 완전 좋은데요?" 라고 하니까 훕 사장님의 대답이 걸작이더군요.
"세상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 즉, 운명이라는 거지요. 하하...
사실은 개봉에 맞추어서 후배를 불러다가 영상도 찍어놨습니다만, 가편집까지 마쳐보니 고민이 좀 생겨서 영상작업은 중단한 상태입니다. 이 얘기는 잠시 뒤에...
외형과 디자인
일단 디자인은 역시 끝내줍니다. 부족하나마 사진으로 보여드리는게 낫겠지요.
하부 캡의 경우 자칫 너무 세게 끼우거나 굳어버리면 어쩌지 했는데, 아래의 구멍이 육각렌치에 맞는 모양이라서 다행히 큰 문제는 없을 듯 합니다. 1번과 3번 슬라이드 밑에 달린 스탑 로드(stop rod)의 경우, 위의 사진처럼 끝까지 돌려서 붙이면:
이렇게 딱 맞는 선에서 고정이 됩니다.
그 외에는 처음에 네덜란드에서 보내준 사진을 보면서 약간 아리송했던 부분인데, 확실히 나팔이 길더군요. 빠듯한 케이스에는 안들어갑니다. 또한 72 스타일이라는 2번 벨은 플레어가 완만하게 벌어지기는 하지만, 크기 자체는 보편적인 122~123mm (4.8~4.85인치) 정도의 크기입니다.
한 가지 이상했던 것은 튜닝 슬라이드가 완전히 일직선으로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이게 뭔가 싶어서 물어보니 원래 약간 비스듬하게 만든다는... 뭔가 상식을 깨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훕 사장님 얘기로는, 대여섯 개의 나팔 / 튜닝 슬라이드를 두고 프로 주자 분께서 (누군지 말씀해주셨는데, 네덜란드 분이라 생소해서 이름을 캐치하지 못했네요;) 테스트하면서 가장 좋은 걸로 고른 것이라고 합니다. 하여튼 이렇게 제작해서 의도적으로 나팔에 텐션을 가한 것이라, 튜닝 슬라이드가 완벽히 일직선이면 지금과는 나팔이 좀 달라질거라고 하는데... 🤔 이거 리드파이프 관 휘는거 아닌가요? 했더니 "노노노노노노노.... 그거 뭐, 해봤자 1~2mm 정도지? 그 정도 가지고 절대 안휘어, 걱정 마" 라고 하시네요 ^^;
여담으로 이날 통화하면서 또 멋진 말씀을 한번 작렬해주셨습니다. "난 개똥같은 나팔은 안 만들어 (I don't make sh*t trumpets)"라고... ㅋㅋㅋㅋ 😂
...다행히 직선으로 된 녀석을 만들어서 보내주는 것은 문제가 아니니 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다행!
정말 가벼운가?
나팔을 처음 딱 꺼내드는데 들었던 생각은 '어라, 생각보다 묵직한데?' 였습니다. 그렇다고 헤비형 나팔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칼리키오가 가벼워서 그런지.... '오이람 치고는' 가벼운 모델이라고 해야 할것 같네요. 요 근래 자주 얘기를 나누는 미국 주자분의 측정치를 가져오자면:
- 바하 43 (스탠다드) ~ 1.075 kg
- 바하 43H (헤비벨) ~ 1.13 kg
인데, 집에 있는 주방용 저울로 오이람과 칼리키오 나팔들을 재어보니:
- 오이람 라이트 ~ 1.1 kg
- 칼리키오 ~ 1.01kg (R2/7r), 1.02kg (1S/2)
정도입니다. 바하를 많이 만져보진 않았지만 어렴풋한 느낌으로 '이거 바하 스탠다드보다 살짝 더 나가겠는데?' 했더니, 과연 그렇더군요. 다만 이 무게 배분이 밸브 부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느낌이라서, 들고 불었을 때에는 확실히 무게에 비해 가볍게 다뤄지는 느낌이 있기는 합니다.
Playability (연주력) - 어떻게 불리는가?
이 나팔에 대해 알아보다가 네덜란드의 ~ 가히 반 라아 전문가라 할 수 있는 ~ 에릭 벨드캄프 선생님한테도 여쭈어 보았는데, 제 처음 화두였던 '얼마나 크게 불리냐 (호흡을 많이 먹냐)' 에 대해서 '대답하기 애매하다, 하지만 쉽게 불린다' 라는 식으로 말씀하셨거든요. 왜 그런지 알겠더군요.
일단 호흡을 특별히 많이 잡아먹는 나팔은 아닙니다만, 부는 느낌이 약간 다릅니다. 트윈튜브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다더니 그래서 그런건지... 실제 리시버~리드파이프가 두껍기도 하구요. 그렇다고 기존의 셀머 컨셉TT나 이클립스처럼 리드파이프 부가 공진하는 느낌까지는 아닌 것을 보면, 단순하게 트윈튜브 컨셉을 그대로 가져온 건 아닌것 같습니다.
아직 적응 중에 있습니다만 반응이 뭔가 독특한데, 음... 바람의 느낌은 '선이 굵다' 정도가 가장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딱딱한게 아니라, 브레이스도 없고 라운드형 + 리버스 슬라이드여서 그런지 유연하게 쑥 나가는?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그 와중에 제가 가장 감탄한건 전반적인 나팔의 안정감과,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히 들어가는 슬로팅의 느낌입니다. 이런 부분들은 아무래도 헤비형 나팔들이 가지는 특성으로 보이는데, 오이람 라이트의 경우에는 트림을 깎아서 무게는 일반적인 나팔 수준까지 낮추었어도, 새롭게 개발한 메인 브레이스와 두께를 유지한 관들의 영향으로 '덜 무거우면서도 헤비형 나팔의 이점을 최대한 고스란히 간직한' 디자인이라고 보시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이런 특유의 특성들 때문에 연주하기가 재미있기는 합니다. 다만 아직 덜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무거워서 그런지, '쉽고 편하게 불린다'는 얘기에는 아직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이 부문에서는 칼리키오가 워낙 특출나서... 심지어 제 입맛에 맞게 수년 간의 튜닝까지 거친 악기라서, 이거보다 더 편하긴 어려울 거라 보기는 했습니다 ^^
하지만 이 '쉽고 편하다'는 이야기가 나팔이 주는 안정감과 정확한 슬로팅, 유연한 호흡 반응 등에서 기인하는 이야기라면 공감하는 바입니다. 이 나팔에 적응하다보면 '편하게 불도록' 주자를 유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격다짐으로 휘두르려고 하면 불리기는 하는데, 힘만 들고 결과는 썩 좋지 않은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칼리키오 #2 파이프처럼 부는 사람이 수렁에 빠지지는 않지만(...). 반 라아 측의 말로는 어느정도 불어보고 익숙해진 다음에 극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네요.
소리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엄청 좋기는 한데, 제가 기대하던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참고 영상으로 보여드리자면 위 녀석은 오이람 라이트 1 입니다. (제것은 2)
오이람 라이트 2의 연주 영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직접 불어본 지금은 완벽히 이해가 가는데...
톤 적인 부분은 좋습니다. 순수하게 톤만 보면 제가 원하던 느낌에 부합합니다.
그런데 뭐가 있냐면... 저는 '품이 넓은 소리'를 원했었는데, 거기에 해당되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혹해서 샀었다가 생각과 달라서 곧 되처분했던 ACB 시그너쳐 샤이어의 경우가 꽤 오버랩 되는데... 소리가 넓게 퍼지는게 아니라, 두께감 있는 소리가 응집이 잘 된 채로 흩어지지 않습니다. 처음 개봉하고 몇번 불어보았을때 '잔향 / 여음이 별로 없네?' 싶었는데, 느낌이 뭐랄까요... 1번 나팔과 비교해서 톤이 좀 더 부드럽고 두텁긴 하지만, 소리가 퍼지는 느낌은 저 1번하고 비슷합니다. 포커스한 느낌은 덜하지만 저런 짱짱한 쪽으로도 소리는 낼 수 있어서, 소리의 스펙트럼 자체는 생각보다 넓더군요.
불다 보니 이 나팔의 디자인 의도와 방향이 무언지 알것 같은데, 반사되거나 페이드아웃되면서 소리가 옅어지거나 공간에 영향을 받는 일반적인 나팔들과 달리, 이 나팔은 자신이 내는 소리가 약해지거나 변하는 일 없이, 벨 앞에서 내는 그 소리 그대로 공간을 가득 채웁니다. 위에 언급한 ACB 샤이어의 경우도 소리의 프로젝션 (보통은 '잘 뻗는다'라고 표현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소리의 투사/투영률?)에 역점을 둔 나팔이었는데, 상대적으로 좀 더 달달하고 끈적한 톤이긴 했습니다만 이런 부분에서 방향이 같았습니다. 울려퍼지기 보다는 두텁게 그대로 공간을 칠해주는... 비유하자면 수채화보다는 유화 느낌인거죠. 오이람 라이트의 개발 배경이, 위 영상의 Eric Vloeimans의 라이브 연주를 찾아가서 본 훕 사장님이 '니 소리가 안들리더라' 하면서 고심하다 개발했다는 건데, 그 사연이 많이 와닿더군요. 잘 들리게 하기 위해서 소리를 밝게 한 것이 아니라, 톤의 코어는 유지하면서도 소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서 풀어지지 않게 한 겁니다.
넓게 퍼지는 스타일의 나팔에 굳이 얽메이지 않거나, 나팔 하나만 가지고 여러 스타일의 연주를 아우르고 싶다면 매력적인 나팔이라고 생각합니다. 톤이 개성적이면서도 극단적이지 않고, 의외로 표현하는 스펙트럼이 넓기도 해서 더더욱.
그리고
저는 반 라아의 다른 나팔을 두가지 더 불어보기로 했습니다. 오이람 라이트 개봉 영상을 가편집하고 보니, 사람들이 연주도 없는 소개 영상에 관심을 느끼려나... 하던 차에 마침 얘기가 오고 가서, 기왕이면 올리더라도 다음에 다른 나팔들과 비교 영상을 생각해보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중입니다.
요 근래 장비 관련 얘기가 상당히 많았던 것 같네요. 당분간은 다시 좀 느긋한 페이스로, 연주 / 연습 얘기로 돌아가볼까 합니다. 1~2주 뒤에 다시 포스팅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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