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즉흥연주 글에 이어서 2부로 이어갈까 하다가, 요 한동안 '좋은 소리'가 꾸준히 유입 키워드에 올라 있었기에 한번 겸사겸사 얘기하고 넘어가볼까 합니다.
재즈 앙상블 반의 연주곡 목록(세트 리스트) 중에 앤스로폴로지 (Anthropology) 라는 곡이 있습니다. 비밥의 시조 찰리 파커 곡인데... 와, 이거 헤드(멜로디)를 못하겠는 거에요.
빠르기도 빠른데, 음역대 중심이 위쪽인데다 위아래로 엄청나게 왔다갔다 해야됩니다. (사실 트럼펫보다는 색소폰 용이라고 봐야...) 저는 보통 위쪽 음역대는 어쩌다 한번 찍고 오는 정도의 곡들만 했었는데, 이건 도중에 암부셔를 리셋할 여유도 없고... 유지가 안되고 무너지더라구요.
처음 30초 남짓인데 이게 뭐라고 참... ㅜㅠ
단체 연주라 뮤트로 좀 더 저항을 받아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리드 악기들한테 묻어서 어째저째 가도 틀리면 티가 확 나니까... 베이스 주자인 교수님은 대략 이게 쉽지 않다는 정도는 아셔도, 트럼펫 입장에서 얼마나 빡센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시는 느낌인데, 약한 모습 보이기엔 오기가 생기고 하하...
실은 그래서, 즉흥연주를 익힐 목적으로 가게 된 모임임에도 불구하고, '헤드도 못 분다는게 말이 되는 건가' 싶어서 즉흥연주 연습은 중단하고 이 곡을... 더 정확히 말하면 '이 곡을 소화할 수 있는 주법을 갖추는 것'을 중심으로 연습하고 있습니다. (사실 즉흥연주를 위한 것이기도 하기는 합니다. 곡 전체를 관통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주법과 암부셔가 갖춰지지 않으면 결국 즉흥연주에서도 표현에 지장이 오기 때문에...) 현재는 연습량 자체는 줄었지만ㅜㅠ (※) 이 과정은 조금씩 되어가는 느낌이긴 한데, 뭐... 이번에 보니 정 안되겠으면 군데군데 옥타브를 내려서 부는 것도 방법이긴 하겠더군요 (검색해보니 곽다경 양이 이렇게 부르던...). 새 학기가 5월부터 시작하는데, 중단했던 즉흥연주 공부를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주법과 암부셔 팁
요 근래에 연습하면서 자주 느끼거나, 되새기게 되는 것들을 조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저의 경우에 이렇다는 것이고, 적용 단계에서는 각자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먼저 신경쓰이게 되는 부분은, '마우스피스라는 생각에 입이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형태적으로는 입이 충분히 옆으로 벌어져야 하고, 혀의 등허리가 충분히 넓고 위-뒤쪽에 자리잡혀야 한다는 것 등이죠. (혀가 전체적으로 가라앉아 있고 입술이 이미 안쪽으로 조여있을 때와, 입/턱이 편하게 벌려져있고 혀가 위-옆으로 메꾸어진 상황은 느낌 차이가 상당합니다. 한번 스스로 관찰해 보세요 🙂) 예전에 올린 말컴 맥냅의 '후'나 (영상 3:20), 멜빈 존스의 '하'(영상 5:30~) 같은 걸 되새겨 보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면 또 텅잉 없이 '후'로만 어택했을 때와 텅잉 어택을 할 때에 상당한 이질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항상 얘기하듯, 형태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문제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라는 거죠.
동시에 호흡 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허리를 곧게 편다거나, 살짝 앞으로 몸을 내밀면서 분다던가, 몸을 뒤로 젖힌 상태에서 자세가 무너지지 않게 유지하며 분다던가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파브리치오 보쏘의 시범처럼 아랫배만으로 마신다 생각하셔도 되구요.
다음 단계로, 요 근래에 가장 재미를 본 것은 입꼬리 주변의 힘을 완전히 빼는 것. 이렇게 하면 팔자주름에서 볼, 나아가 목으로 이어지는 근육들까지 이완되면서 나머지 부분들은 알아서 잡힙니다. 심지어 숨까지 자동으로 중앙-몸통으로 모여요. 다만 위에 언급한대로, 마우스피스에 정신과 몸이 끌려가는 상태에서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위의 것들만 해도 '당장의' 어택부터 한 소절 정도의 연주까지는 큰 문제 없이 해결이 됩니다. 이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 제 글을 오래 봐오셨던 분들이라면 아실 수도 있겠지만 😂 ~ 소리를 바꿔가고 도중에 숨을 쉬면서도 일정 이상의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취미 연주에는 큰 지장이 없어서 본격적으로 교정하지는 않았지만,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숨 컨트롤이거든요. 예를 들면 고음에서는 숨을 과하게 쓰고, 내려가면서는 숨을 꺼트려버리면서 입술을 더 조이게 되는... 주법이 서서히 망가지는 경향이죠.
바람 부르기 (윈드 플레이)
그래서 최근에 마지막 단계로 하고 있는 것이 '바람으로 연주하기' 입니다. 영어권에서 wind play 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전부터 곡 연주에 위와 같은 문제가 두드러지면 짬짬이 하면서 도움 받았던 방법입니다. 말보다는 아래 영상을 잠깐 보시죠:
하아... 옛날부터 참 번역하고 싶은 영상인데, 이걸 과연 언제나 할 수 있을런지... ㅜㅠ
1시간 19분부터 보시면 되는데, 중요한 것은 음의 높낮이나 크기가 어떻게 되었던, 바람 자체는 언제라도 '편하고 느슨한 숨', 즉 한국에서 보통 '따듯한 숨'이라고 하는 그것이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에 하는 방법은 영상에서 나오는 것만큼 암부셔를 각 잡고 하지는 않는데, 암부셔를 갖추고 하면 입술 구멍이 좁아지면서 압이 생기고, 입술 주변에 힘도 들어가며, 바람도 빨라지기 때문에, 압으로 인해 목을 조인다던가, 빠른 바람 때문에 제대로 편한 숨을 쓰고 있는지 헷갈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연주하면서도 최대한 릴랙스된 상태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입술 주변에 최대한 힘을 안 넣기 위함이구요. 익숙해지면서는 서서히 위의 영상처럼 암부셔를 잡으면서도 하겠지만, 실제로 그냥 창가에 김 끼우듯 입을 느슨하게 두고 하더라도 이걸 바로 연주로 똑같이 옮겨보면 2옥 솔 위쪽까지도 그냥 쭉쭉 불 수 있습니다. 소리가 좀 어벙(?)해서 그렇지요 😁
입술 무시하기
일전에 아담 라파의 쉬운 고음 영상을 번역하면서 딱 한 군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이 장면입니다 (앞뒤 내용 포함). 아담 라파는 입술을 뽀뽀하듯이 모은 'fish face'에 대한 얘기도 한 적이 있고, 휘파람 얘기도 있고 하니, 입술 중앙을 약간 앞쪽으로 모은 상태를 얘기하는 건가? 싶기는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요지는 '입술은 그냥 내버려 두면 알아서 떨리니 일일이 조작하려고 하지 마라' 입니다. 실제로 완전한 이완 (릴랙스) 상태에 머무르면, 머리로 생각하기엔 도저히 고음이 안날 것 같은 입술 형태인데도 아무렇지 않게 소리가 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바람이 길을 찾아서 알아서 열린 / 약한 부분으로 나가기 때문인데, 이걸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입술이 버텨버리면서 오히려 소리가 닫혀버립니다. '입술을 고정하는 건 마우스피스에만 맡겨도 된다'고들 하는데, 위의 바람 부르기도 그렇고 릴랙스된 연주 상태를 체험해보시는 분들은 익숙해질 수록 이게 무슨 느낌인지 아실 것 같습니다. 입술 쪽에 완전히 신경이 꺼진 상태여야 하는데, 내가 어떻게 모양을 잡고 힘을 주는 것과 실제로 떨림이 일어나고 막히는 것과는 얼마나 별개의 이야기인지... 치사하다(?)고 느껴질 정도죠 하하.
좋은 소리...
요새 돌아보면 '소리내기' 부분에만 집중하다 보니, 그것이 꼭 음악 연주와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너무 간과해왔구나 싶더군요. 트럼펫을 접하고 연주하는 모든 분들을 위해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니 그리 된 부분도 있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보충하거나 원하는 소리를 얻기 위해 그랬던 것도 있겠지요. 또한 녹음이든 공연이든, 곡을 연주할 일이 없어지다 보니 그렇게 되버린 것도 있습니다.
새삼, '좋은 소리'란게 무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공통분모는 있습니다. 열린 / 꽉 찬 / 울림이 있는 / 둥그런 등의 수식어들로 표현되는 그것이지요. 이것은 동시에 자유로운 연주를 가능케 해 주는, 즉 '맞는' 주법으로 불 때 나는 소리와도 상통합니다. 기본적으로 이완(릴랙스)와 여기에서 나오는 편한 호흡은 필수예요. 그런데 이런 '기본 조건'을 넘어서고 나면, 사람마다 좋아하는 소리도, 낼 수 있는 소리도 다르지요.
신기하게도, 곡 없이 연습에만 시간을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한참 연습할 때의 주법과 소리가 막상 곡 연주 상황이 되면 전혀 달라지는 경험을 너무 자주 했어요. 연습이 전부 무의미한 시간이었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거기에서 얻고, 깨닫고, 할 수 있게 된 부분이 많죠. 다만 연습을 하다보면 그냥 넘어가도 될 부분도 있고, 물고 늘어져야 할 부분도 있는데... 결국은 선택과 집중, 나아가 활용(적용)까지 모두 잘 생각해서 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건데, 좋은 소리란 것은 내가 부지불식 간에 찾아가는 소리가 아닐까 합니다. 예전에 번역한 트럼펫 학파들 간의 회담 내용도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구요.
'머리 속의 음상'이 고스란히 표현되는 금관의 특성상, '어떻게 하면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나요?'란 질문에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아무래도 자가 녹음인 것 같습니다. 녹음 장비나 품질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습니다 😁 연주할 때 머리속으로 내던 소리와 실제로 녹음된 소리와의 간극을 직접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죠!
그 충격에 고민하고, 머리 속의 그 소리가 나올 때까지 개선을 거듭해서, 다시 제대로 녹음을 해보려는 정도의 열정은 부디 지속되길 바라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
※ 요즘 연습량이 줄은 것은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습관을 새로 들이는 과정에서 예전 습관이 튀어나오거나 돌아가는 것을 최대한 억누르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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