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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마하기/생각 다듬기 & 팁

테니스의 내적 게임 (이너 게임) - 티모시 골웨이

by J.5 2023. 2. 26.

 

#1.

전북 쪽에서 잘 가르치기로 유명한 트럼펫 선생님이 계십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뵈면서 조금씩 가르침을 받았는데, 가르쳐주시는 팁들 중에는 실제 트럼펫을 부는 것과 별 관계도 없어 보이는 것들이 어떻게 연주를 쉽게 해주는지 이해가 잘 안 가는 것들이 있었어요. 어택할 때 한쪽 팔을 들어올린다던지, 고음에서 한쪽 어깨를 살짝 든다던지...

그러다 어느 순간인가 깨닫게 되는 게 있더군요. '아, 의식을 부는 데에서 떼어놓으면 알아서 잘 불리는 구나.'

#2.

저는 교직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면서 교육, 공부, 학습 등에 대해 오래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 깨달은 것이 있는데, 사람이 뭔가를 익힌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모방'이라는 겁니다. 본 동영상에도 아이가 걸음마를 익히는 과정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예전에 올렸던 마빈 스탬의 즉흥연주에 대한 생각에서도 아이가 언어를 익히는 과정을 빗대어 설명하는 부분이 나오죠. 암부셔와 주법 개론 등에서도 '선생님이 옆에서 같이 봐주시면 무의식적으로 온 감각을 총동원해서 선생님을 따라하게 된다'고 한 적이 있는데, 같은 맥락입니다. 주변 사람들한테 가끔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한테 책 읽으라고 시키기만 하면서 본인은 책 한권도 안 읽는다면, 그 아이도 남들한테 책 읽으라고 시키면서 자기는 안 읽는 사람 되는 거다' 라구요. (예전에 가수 이적의 어머니인 박혜란 님의 양육 이야기를 인상깊게 본 기억이 남아있는데, 이 역시 한 예시가 될 것입니다.) 원초적인 '모방'의 힘!

#3.

몇달 전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생이 음료수 내기로 '숨쉬기 게임'을 하자고 그래서 내심 깜짝 놀랐습니다. '형 이건 절대 못해요. 사람이 숨을 의식하면 숨을 제대로 못 쉬거든' 나팔이나 호흡법 관련해선 전혀 문외한인, 그저 시시콜콜한 내기 게임을 좋아하는 동생이 이런 말을 하다니... 허 거 참. 웃음이 나오더군요.


'테니스 - 이너 게임 (The Inner Game of Tennis)'은 1974년에 처음 발간되어 스포츠 심리학 분야에 센세이션을 몰고 왔던 책입니다. 그 영향력은 최근까지도 건재하여, NFL의 전설적인 선수인 톰 브래디, 마이클 조던의 팀메이트에서 최근 감독으로서 골든스테이트를 연달아 우승시킨 스티브 커, 그리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하나인 이츠하크 펄먼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도 몇년이 되었는데, 아마도 인디애나 대학에서 30년 가까이 가르치고 계신 존 롬멜 교수님의 마스터클라스에서 접한 것이 처음 아닐까 싶네요.

영어권 커뮤니티(트럼펫헤럴드)에서도 찾아보았습니다만 실제로 많은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셨고, 심지어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뒤에 발행된 '음악의 이너게임' 보다도 원본인 '테니스의 이너게임'이 가장 좋았다는 얘기들도 있더군요.

트럼펫에서는 '소리에 집중하라'는, 빌 애덤으로 대표되는 학파의 컨셉이 이 '이너게임' 컨셉과 가장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카루소의 6음 연습 역시도 ~'머슬 메모리'라는 용어로 표기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원리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 단순히 그 소리만 내면 되는 것이 아닌, 지침을 철저히 따라주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테니스의 이너게임' 컨셉을 알고 카루소 연습을 다시 보시면 그 전과는 상당히 다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저는 악기 연주를 익히는 것이 언어를 익히는 것과 굉장히 유사하다고 생각하는데, 언어는 기본적으로 4가지 스킬/영역으로 나뉘어 집니다: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한국에서의 고질적인 영어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다들 아시겠지만, 읽기와 쓰기 같은 학문적인 부분은 머리로 하는 공부가 맞습니다. 하지만 '듣기' 와 '말하기'는 이런 식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늘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축구 교본을 백날 보고 공은 한번도 안 차본 사람이 축구를 잘 할 수 있을까요? 피아노 서적과 악보를 엄청나게 연구했지만 건반에는 손도 안 올려본 사람이, 피아노를 잘 칠 수 있을까요? 반대의 경우는 아주 많죠. 악보를 못보는 뮤지션이라던가... 즉, 이런 식으로 '몸'을 써서 하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하지' 않으면 늘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 더 타파(?)하고 싶은 것은 '나이가 들면 익힐 수가 없다'라는 관념입니다. 물론, 어릴 때부터 거의 본능에 가깝게 몸에 각인시킨 사람과, 나이가 들어 처음 익히기 시작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그 자연스러움에서 차이가 나는 경우가 보편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엔 준 프로급 까지의 수준이라면, 아니면 적어도 '취미로 즐길만한 수준'까지는 나이에 상관없이 익히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한국에서는 부족한 인프라를 감안하더라도, 요 근래에 트럼펫으로 음반을 낸 분들을 보면 오재철 씨 같은 경우엔 스물 아홉에 트럼펫에 입문하고, 임달균 씨는 (정확한 나이를 찾을 수 없지만) 아마 30대에 들어서 트럼펫으로 전환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당신이 영어를 못하는 진짜 이유'라는 다큐멘터리를 KBS에서 방영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참여자가 57세의 박상구 씨였습니다. 정년이 많이 남지 않은 나이, 프로젝트 시작 당시 박상구 씨는 하위권 그룹에 속해있었지만, 적극적인 참여에 힘입어 가장 큰 폭으로 말하기 능력이 향상된 분들 중 하나였습니다. (개그우먼 박나래 씨에 이은 2위)

나이가 들어서 악기 실력이 늘기 어려운 이유는, 생각도 많고, 고집이나 고정관념도 강하다는 점, 몸이 뻣뻣하기도 하고, 제대로 된 지침대로 (= 정기적인 레슨)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순전히 현생을 살아내야 하는 덕에 '몸으로 온전히 체화시킬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 제일 크다고 봅니다. 부디 '능력이 안된다'라고 밑도 끝도 없는 벽을 스스로 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연습 역시도 최대 4~5시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이츠하크 펄만의 경우, 본인은 하루에 3시간 연습으로 충분했다고 말합니다.)


'테니스의 이너게임' 자체에 대한 깊은 설명은 하지 않았으나, 동영상을 보셨다면 충분히 그 개념에 대한 감을 잡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는 메커니즘을 하나 하나 본인이 컨트롤하려고 하면 오히려 뇌정지가 오고 버벅거리게 되며 (숨 하나도 제대로 못 쉬지요), 온전한 몰입을 통해 몸을 직접적인 통제에서 풀어주는 것으로 자신이 목표로 하는 그 상(象)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팔을 불 때에 혀나 입, 숨을 어떻게 하라는 식의 기술적인 부분을 떠올리더라도, 그것을 최대한 간소화한 '키워드' 혹은 특정한 느낌, 감각 정도로만 축약해 떠올리는 편입니다. 물론 가장 잘 불리는 때는 아무 생각없이 음악이나 소리 그 자체에만 100% 몰입해 있는 경우죠 :) 기술적인 부분들은 불면서 자가 모니터링을 통해 관측되는 부분을 머리 속으로 메모해 놓는 정도입니다.

일전에 멜빈 존스 편에서 언급되었던 정보:

사람의 뇌는 1초에 11,000,000 비트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지만,
'의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은 40~50비트에 불과하다.

위의 영어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서술적 기억'(명시적, 의식적인 기억)과 '절차적 기억' (무의식적, 체화된, 운동 기억 등).

저는 '공부'와 '배우다', '익히다'라는 단어들이 다 조금씩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이 글은 무언가를 익힌다는 것의 과정이나 개념 그 자체를 한번 되짚어 볼만한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특히나 금관악기의 경우는 '머리를 속이라'고 하지요? 스위치 켜듯이 뭔가 '탁' 켜지기만 하면 안되던 것도 갑자기 쉽게 되고, 반대로 곧잘 하던것도 갑자기 안되기도 하고 그럽니다. 루틴이나 워밍업이란 것 역시도, 나팔을 부는 것에 몸의 주파수가 맞춰지도록 얼러주는 것이 기본적인 목적입니다. 숙달되었거나 자주 하시는 분들은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 투자가 필요하지 않은 분들도 많지요.

부디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며, 이번 글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p.s. 이번 주의 챌린지(?) - 0옥 솔부터 1옥 솔 까지 문제 없다! 하시는 분들께

1:10~2:00 사이에 크리스 존슨이 마우스피스를 바꾸어가며 같은 연습을 합니다. 1옥 솔로 계속 돌아가면서 0옥 솔까지 반음씩 내려가는 연습인데, 이걸 크리스 존슨 수준으로 부드럽고, 깔끔하고, 일관되게 할 수 있으실까요? 😁 (처음 벤딩은 넣어도, 넣지 않아도 무관) '이너게임' 얘기가 나온 김에 한번 제안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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