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리두는 호주 원주민들의 전통 악기입니다. 은근히 매니악한 팬층이 있는 악기인데, 저도 어릴 적에 호주에서 몇번 체험해본 적이 있습니다.
이 악기를 사용하는 것이 트럼펫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몇년 전에 나왔었습니다. '팝스' 클린트 맥러플린이 ~ 최초인지는 모르겠으나 ~ 이야기한 것으로 유명한데, 얼마 전에 그의 책 중 하나인 'Tensionless Playing (긴장 없이 연주하기)' 를 읽다보니 이 디저리두가 요긴하게 쓰이길래 궁금해져서 이 참에 한번 사 봤습니다.
처음엔 '아무리 그래도 플라스틱보단 나무가 낫겠지' 하고 동남아산 대나무 재질로 된 것을 샀는데 (원래는 코알라들이 좋아하는 유칼립터스 나무로 만듭니다), 허억...
이렇게 취구가 세 갈래로 쪼개져서 왔지 뭡니까... ㅜㅠ
식겁해서 바로 환불 처리하고 (다행히 사진이랑 보내주니까 별말 없이 깔끔하게 처리해 주더군요), 맨 위 사진에 나와있는 미제 PVC 제품을 샀습니다. 막상 사고 보니 PVC 제품이 훨씬 낫더군요. 단단하면서도 탄성이 있고, 무게도 상대적으로 가볍고, 인공제품이라 품질관리도 되다 보니 저처럼 캐주얼하게 사용하기에는 좋은것 같습니다.
요즘 나눠서 연재하고 있는 미국 학파들 간의 회담(2) 에도 언급되지만, 팝스의 지적 역시도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마추어 주자들은 입에 필요없는 힘(텐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다르게 연주한다. 아마추어는 볼(뺨)의 근육을 사용하지만, 프로들은 입술 주변의 구륜근(입둘레근, Orbicularis oris)을 사용한다."
여기에 연관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코너를 조이라'고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팔자주름이나 그 바깥쪽을 조이지만, 실제 여기서 이야기하는 코너는 훨씬 안쪽이라는 얘기입니다. 입술의 코너 바로 뒤쪽 / 안쪽 정도라는 거지요.
회담 3편에서 이야기하는 '단단하지만 느슨하게' 역시도 입술구멍 (애퍼쳐) 쪽은 힘을 주지 않지만 이 코너 쪽은 단단하게 잡아준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스탬프의 'Lock & blow' 역시 같은 맥락이구요. 워버튼의 PETE 역시 이 구륜근을 단련시켜줍니다. 이렇게 정리하면 많은 것들이 한 점으로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부끄럽지만 저는 한동안 PETE 연습을 하면서 '왜 다르지?' 했었습니다 ㅜㅠ)
팝스가 디저리두 활용을 장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해로운 바깥 쪽 힘을 완전히 풀었냐 아니냐 여부를 가장 또렷이 보여주는 장치가 디저리두라는 겁니다. 일종의 판독기 같은거지요. 공명음과 드론 (Drone) 소리를 내는 것이 핵심인데, 이것 때문에 영상을 녹화해야 하나 싶었으나 다행히 유튜브에도 관련 영상을 올려놓으셨더군요.
1:19부터 재생되도록 맞춰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얼굴이나 입술이 너무 타이트하면 나는 소리를 들려주고 (일반적인 립버징 비슷하지요), 그 뒤에는 바른 방법을 보여줍니다. '파' 하듯이 하면서 입술 안쪽을 떨리게 하는거지요. 타이트하면 공명(레조넌스)가 없는 것은 트럼펫에서도 마찬가지라면서요.
드론 소리라는 것은 기계음 내지는 외계인 소리(?) 비스무리한 겁니다. 유튜브에서 검색하시면 이것저것 들어보실 수 있는데... practice drone, cello drone, tanpura drone 등 이것저것 있습니다. (요즘엔 날아다니는 드론이 나와서 그냥 드론만 검색하면 안 나오네요;) 예전에 링컨센터 동영상에서 잉그리드 젠슨이 사용한 슈루티 박스도 드론(음) 생성기입니다.
팝스의 지침대로면 이 디저리두를 연주하는 느낌으로 똑같이 힘을 빼고, 앵커/KTM 텅잉으로 혀만 사용해서 천천히 음역을 넓혀나가면 2옥 솔 까지는 아무런 텐션 없이 연주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위쪽으로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흥미로운 연습인것 같습니다. 저처럼 암부셔 때문에 고민이 많으셨던 분들은 한번 해 보실만 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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