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계 전설의 명기 마틴 커미티! 지금은 크리스 보티의 나팔로 유명하지만 재즈 황금기에 거의 모든 재즈 트럼펫터들이 거쳐간 악기로 유명하지요. 몇 해 전부터 세간의 관심이 다시 한번 집중되어서 프리미엄이 붙었습니다만, 제대로 된 녀석을 만나기가 보통 어렵지 않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중고로 구입했다가 상태가 안좋거나 기타 문제가 있어서 땅을 친 구매자들이 세계적으로 상당히 많을 겁니다.
이 마틴 커미티 열풍의 중심에는 0.468인치 #3번 보어 (라지보어) 버전이 있습니다. 미디엄보어 (#2번, 0.453) 모델이라던지 핸드크래프트 모델 (이건 이것대로 좋기는 하지만, 기존의 마틴커미티와는 분명히 다른 나팔이라고 하더군요), 마틴 커미티 코넷 등등 관련 모델들도 덩달아 가격이 올라갔구요, 심지어 스텝보어 디자인 자체에도 관심이 쏠려서 스톰비 VR2 등이 조금 더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트럼펫 세계에도 시대별로 여러 명기들이 있습니다만,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며 이 정도 현상을 불러일으킨 건 마틴 커미티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마도 그만큼 그 시절 재즈트럼펫의 소리에 대한 갈망과 향수가 진했겠지요.
이런 열풍이 대두되기 전부터 마틴 커미티의 계승을 표방한 로울러가 한층 더 주목받은 것은 물론, 마틴 커미티 '스타일'의 나팔이 뭐가 있는지 질문하는 글들도 많았습니다만 (야마하 YTR-8310z 바비슈 모델이라던가), 이후 다양한 곳에서 마틴 커미티의 이름을 내걸고 자신들의 스타일로 개량한 모델들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아마 워낙에 오래 전인데다가 브랜드도 사라져서 상표권 문제가 없는 듯 합니다). 마틴 커미티는 자기 혼자서 디자인한거라고 화를 냈다던 레이놀드 쉴케 씨의 쉴케 사에서 '핸드크래프트' 라는 이름으로 (왜 굳이 핸드크래프트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HC-1 (미디엄보어)와 HC-2 (라지보어, 카퍼벨)을 발표했고, 소규모 제작사인 블랙번의 '스텝보어' 모델, 아담스 사의 A9 등이 나옵니다. (그 외에도 튜닝슬라이드 브레이스가 없고, 리버스 튜닝슬라이드와 스텝보어 디자인을 채용한 나팔이라면 상당수 마틴 커미티와 연관이 있을 겁니다. '재즈'라던지 특유의 음색이 언급되면... 100%라고 봐도 되겠죠?)
※2022.03.17 업데이트: 쉴케 HC 시리즈는 양쪽 다 0.468 (라지) 스텝보어 디자인이며, 두 모델의 차이점은 벨 재질 (HC1 - 브라스, HC2 - 카퍼)과 군데군데의 튜빙 재질 (HC1 - 니켈실버, HC2 - 브라스) 차이입니다.
언급되는 새 모델들 중 느낌을 잘 살린 듯한 영상은 아담스 A9 정도군요
그 와중에 로울러는 아예 트럼펫 제작 자체를 중단하고 트럼본 쪽으로 전념하기에 이릅니다. 뭔가 아쉬움이 남지만...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로이 로울러 씨의 말대로 트럼펫 제작이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할 때, 로울러가 주는 느낌은 현대적인 나팔이 지향하는 방향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느낌이고, 가격을 대폭 올리는 것도 브랜드의 이미지 상으로나, 나팔의 스타일적인 면으로나 이래저래 여의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16년 여름, 캔스툴에서 묵직하게 한방을 터뜨립니다. '마틴 커미티 라지보어 모델'을 직접적으로 명시하며, 거의 순수한 복각모델로서의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모델 '1603'을 발표한 거죠. 이것은 캔스툴로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인데, 원래 캔스툴은 이름난 명기들을 차용해서 살짝 재해석 또는 개량을 가미해서 내놓는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공식 설명에서는 원형 모델이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명시하는 일도 없고, 암시 정도만 살짝 던져놓고선 '우리가 더 좋게 만들어놓았다'라는 점을 내세우죠. 그런데 이번 1603에 한해서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 겁니다.
저는 이걸 보고 캔스툴 사(社)가 나팔 디자인 뿐 아니라 판매전략에도 천재적인 감각이 있구나 싶어 감탄했습니다. 보아하니 이래저래 '개량형' 모델들이 쏟아져나와도 사람들 반응은 뜨뜻미지근하고, 굳이 자기들도 '개량'을 표방해서 다른 유수 제작사들과 레드오션에 뛰어들 필요가 없거든요. 뚜렷하게 알려진 오리지널 마틴 커미티(#3)와의 차이점은 벨이 원피스라는 것과, 보어 사이즈가 0.468이 아니라 0.470 이라는 점 정도입니다. 보어는 캔스툴의 밸브 규격에 맞추어 이뤄진 변경점이라고 하는데, 느낌상 별 차이는 없다는 듯 하네요.
그리고 캔스툴은 성공한 마일즈 데이비스 덕후(...)이자 유일한 직계제자인 월러스 루니를 만납니다. 월러스 루니 역시 마일즈 옹한테서 직접 물려받은 마틴 커미티를 계속 불었었거든요. 그리고 결과는... 월러스 루니에게서 극찬과 인증을 받는 기염을 토해냅니다. 영어로 된 관련글은 캔스툴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2016년부터 이미 음반 녹음에 사용했다고 하니 한번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간만에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나팔입니다. 기회가 되면 꼭 불어보고 싶네요. 아마도 다시 마틴 커미티의 느낌이 고파지면 이녀석이나 아담스 A9 둘 중의 하나에서 고를 것 같습니다. (적고 보니, 멋스러운 커미티 식 워터밸브 키를 계승한게 이 두 녀석이네요^^) 그리고 중고로 마틴 커미티 찾으시는 분들께는 캔스툴 1603을 진지하게 고려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P.S.※ 이 나팔을 뒤로 하고, 캔스툴의 수장이자 나팔 디자인의 핵심이었던 지그만트 캔스툴 옹은 2016년 11월 1일 영면에 듭니다. 1603이 지그만트 캔스툴의 유작처럼 남으면서 마틴 커미티의 아우라가 한층 더 두터워지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캔스툴은 이제 순수한 2세대 경영진으로 넘어가면서 웹사이트도 완전히 새롭게 일신했는데, 향후 지그만트 칸스툴이라는 거인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 고민될 것 같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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