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펫 연주 관련 이야기를 안한지가 꽤 된 것 같습니다.
협연이나 녹음을 할 때 가장 신경쓰이는 것 중의 하나가 음정인데, 얼마 전에 이 부분에 관해 유명한 분의 강의를 듣게 되어서 옮겨볼까 했거든요. 시카고 심포니에서 아돌프 '버드' 허세스 옆에서 오랫동안 세컨드 트럼펫을 역임했고 이후로도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다 작년에 타계한 찰리 가이어 (Charles Geyer) 의 강의 녹취였습니다.
그런데 번역 식으로 하려고 제대로 뜯어보다 보니... 뭔가 얘기가 상당히 재미(?)있더라구요. 이것저것 좀 더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실제 연주와는 크게 연관이 없다보니 대충 넘어간 부분인데, 예전부터 아리송했던 것 중에 하나가 트럼펫의 배음이었거든요. 이것들을 언급할 때에 '하모닉 시리즈 (harmonic series)'라는 용어가 있고 '파샬(partial, 부분음)' 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하모닉 시리즈라는 것은 엄밀히는 배음을 이루는 음들의 그룹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 배음을 이루는 각각의 음을 가리키는 단어가 부분음(partial)이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트럼펫의 배음을 이야기할 때 상식적으로 1옥 도부터 시작해서 솔-도-미-솔-시플랫-도 로 이어지는 순서이다 보니 사람들이 partial을 언급할 때마다 헷갈렸는데, 음악이론적으로 트럼펫의 배음을 이야기할 때의 기초음/기본음(fundamental)이 1옥 도가 아니라 0옥 도 (페달 C)더군요. 어쩐지... ㅜㅠ 다만 트럼펫에서 이 기초음을 내기 어려운 것은 악기의 구조상 어쩔 수가 없다고 합니다. 원래 이 배음이라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일자형 파이프를 기초로 한 것인데, 트럼펫은 이 파이프 양 끝에 마우스피스와, 특히나 벨이 벌어지는 것 때문에 공명이 일어나려면 2번째 배음인 1옥 도부터 가능하다는 얘기들이 있네요. 코넷과 플루겔혼에서 이것이 더 수월한 이유는 일자형이 아니라 관이 서서히 벌어지는 원뿔형 디자인 덕분이라고... 복잡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여튼 기본음에서부터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배음들을 자연배음이라고 하는데, 이것들은 정수 배수라서, 예를 들면 한 옥타브 위는 주파수 / 진동수가 두 배죠.
1:1 -> 0옥 도 (기본음)
2:1 -> 1옥 도
3:1 -> 1옥 솔
4:1 -> 2옥 도
5:1 -> 2옥 미
6:1 -> 2옥 솔
7:1 -> 2옥 시플랫
8:1 -> 3옥 도
그리고 여기에서 5th partial, 즉 5번째 배음인 2옥 미는 태생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연배음에서의 이 음은 4번째 배음과의 관계가 4배수:5배수 = 1.25인데, 현대 음악에서 각 음들 사이의 간격을 균등하게 나누었을 때의 평균율로 치면 이 배수가 1.25992 라고 합니다. 반음 간격이 100센트인데, -13.69 센트만큼 차이가 난다고 하네요. (7배음인 시플랫은 더 심하구요.)
다만 이 평균율은 전조 / 조성 바꾸기를 위해 음정 간격을 균등하게 나눈 것이고, 화음을 쌓으면 순정률(자연배음)에서 나는 소리가 확실히 더 깔끔하게 떨어지기는 합니다. 위 찰스 가이어의 얘기로는 그래서 다장조 (C 메이저) 3화음에서는 원래 미 음을 약간 낮춰 낸다고 하네요. 그게 더 자연스럽고 듣기에 편한 음이라고요.
하여튼 이렇게 평균율을 갖추게 된것은 좋은데,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배음들이 아닌지라 밸브 3개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말 무던히도 머리들을 쥐어짜냈더랍니다. 아르방이 그 당시에도 혁명적인 사람이라, 사람들은 거의 반동분자처럼 여기고 운지법을 익히기 꺼려했다고 하는데, 잠깐 찾아봤더니 악기 디자인 측면으로도 별별 디자인이 다 있었네요 (링크).
그래서 이런 이유들 때문에 C 조 트럼펫은 Bb 트럼펫과 슬라이드의 길이가 미세하게 다르고, 운지도 다르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1+2가 항상 높은 이유는, 애초에 각각의 밸브가 오픈 상태에서 반음, 한음씩 낮추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던 데에 더해, 플랫한 2옥 레 음정을 조금이나마 끌어올리기 위해서 1번 슬라이드를 살짝 짧게 해서 그런 거라고 하네요. 어렴풋이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참... 😂
예전에 고급 나팔에 관한 글을 쓰다가 트럼펫의 음정 경향 그래프를 첨부했었는데, 운지에 따른 경향을 그림으로 표현한 곳도 있고, 배음에 따른 음정 경향을 악보에 표기해 놓은 문서도 있네요.
기타 관련글 #1, 관련글 #2 (영문, 개인 참조용)
찰스 가이어의 얘기 중에 소소하게 흥미로운 것들이 몇가지 더 있기는 하지만, 시간 상 오늘은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크게 중요한 것들은 아니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첨언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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