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음대에서의 재즈 앙상블 모임은 짧은 공연과 함께 두 학기 동안의 참여를 마쳤습니다. 잠깐 숨을 돌리고... 내년이나 내후년 즈음 다시 시작할까 생각 중입니다.
초기라서 그런지 상당히 빠른 페이스로 이것저것 깨닫고 느끼는 과정이었는데, 한 타임 매듭을 지으면서 마지막에 느낀 것들을 조금 정리해 보려 합니다. 나중에 다시 돌아오면 멈춘 곳에서 다시 픽업하고 이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일단 곡을 알아야 한다
저희 모임에서 암묵적으로 리더격에 가장 가까운 멤버가 색소폰을 부는 조엘인데, 이 분은 이번 공연에 아예 악보를 들고 오지 않았더군요. 헤드를 불때 실수를 가끔씩 하는 분인데도... 뭔가 느껴지는 바가 많았습니다.
이곳에서 가르치는 분들께 공통적으로 듣는 이야기는 '최대한 빨리 악보에서 떨어져야(졸업해야) 된다'라는 말입니다. 헤드 (멜로디) 자체는 순수 암기에 가까운 영역이지만, 그 정도는 암기나 또는 직관적으로 (음감을 통해)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고, 더 중요한 것은 송 폼(곡의 전체적 구조와 형태)이나 코드 진행을 이미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처음 들어왔을 때에도 간단한 곡 분석의 시간을 갖고 바로 연주로 들어가는 점이 신기했는데, 이 '곡 분석' 부분이 왜 필수적인지 공연이 가까워질수록 알겠더군요. 「Moonlight in Vermont」를 예로 들면 일반적인 A-A-B-A 의 패턴이긴 한데 A 섹션이 8마디가 아닌 6마디라던가, 「Song for My Father」 같은 경우는 A섹션에서 코드가 한 음씩 하행하는 구조라던가, 비교적 간단한 코드 구성이지만 턴을 하는 5,6 번째 마디에서는 텐션음이 들어간다던가... 곡마다 그 곡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있더라구요.
물론 갑자기 잼을 한다던지, 곡을 잘 모르는 경우에는 악보를 어느정도 보면서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경우에도 빠르게 그 곡의 전체적인 틀에 대한 파악을 할 수 있어야 되겠더군요.
코드 진행에 대한 접근
위와 마찬가지로 꾸준한 경험을 통해 익숙해지는 수 밖에 없지만, 코드 진행을 어째서 상대음으로 카운트 하는지도 뚜렷이 와닿게 되었습니다. 「Mr P.C.」같은 경우를 예로 들면 (Bb악기 기준) D마이너 곡이고, 1-4-1 | 651... 곡의 흐름을 알 수 있고, 솔로를 릭이나 패턴 형식으로 연구할 때에도 이런 식으로 적용이 되겠구나 하고 알겠더군요. 일전에도 언급했지만 솔로를 카피할 때에는 카피하고 싶은 부분만 떼어내서 12키로 하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 역시 이런 코드진행에 대한 개념을 포함시켜서 해야 하겠더라구요.
반복과 여백은 나쁜 것이 아니다
즉흥연주 초짜로서 빠지게 되는 다양한 함정이 있습니다. 특히 이번 학기 후반에 맷 키건(Matt Keegan) 선생님이 들어오면서 이것저것 언급하시는데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공감이 가더군요. 방과 후에 여쭤보니 자기도 다 겪어봤고 지금도 겪는 문제들이니까 잘 아는 거라며 웃으셨습니다.
처음 즉흥연주를 접하게 되면 모종의 본능적인 강박에 붙들리게 되는데, 가장 큰 것은 '소리가 끊기지 않게 할 것', 그 다음으로는 '같은 음이나 프레이징을 반복하지 않을 것' 같은 부류들입니다. 이것들이 합쳐지면 나오는 결과물은 바로 초짜의 그것인데, 맥락없이 횡설수설 계~속 무언가를 늘어놓는 것이죠. 실제로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 반대입니다. 반복은 청자들에게 메시지를 각인시키고 같이 올라탈 수 있게 해 주며, 중간 중간의 여백은 숨 돌릴 여유, 상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백을 틔워주며 솔로를 완성시키는 요소가 되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단순한 한두 음만 쓰더라도 리듬이나 타이밍 등의 횡적인 (시간적) 부분을 흥미롭게 가져가는 것이 훨씬 더 솔로를 솔로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종적인 (음계) 요소도 물론 중요하지만요.
자신감과 기본기
위에 언급한 함정들은 예전 아크 반 로옌이 정확하게 짚어줬던 부분인데, 그의 말대로 자신감의 결여를 반증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자신감이란 건, 실제로 무언가를 내 안에 쌓아놓기 전에는 겉으로 '척'하면서 속일 수 있는 부분은 아닌 듯 합니다. 실제로도 연습을 해 보면, 아예 한 마디당 간단한 무엇만 한다고 박아두고 나면 훨씬 더 자신감과 여유가 생기고 듣기도 좋아지는데... 이때 맛보기는 할 수 있는 정도랄까요.
이 자신감이란 부분은 기본기와도 상관 관계가 큰데, 마치 닭과 달걀 같은 관계랄까요? 예를 들어 내가 어느 타이밍에 / 어느 음을 / 어떻게 불지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그리고 그것을 깨끗하게 수행해 낼 수 있으면, 그 소리는 어디로 갈지 헤매면서 내는 소리와는 질적으로 아주 다른 소리가 납니다. 결과물 만을 놓고 본다면, 음의 선택은 기초적이더라도 이런 자신감 있는 소리로 하는 연주가, 두리뭉실하고 산만한 그것보다 훨씬 나아 보입니다.
이것은 어떤 곡을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즉흥적인 부분을 배제하고라도 본인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템포와 운지, 아티큘레이션, 음역 등등을 깨끗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기본기가 갖춰져야 합니다. 곡의 짧은 부분만 떼어다가 연습을 해보면, 머리속에 떠오른 라인을 기억해서 반복적으로 연습을 하더라도 그것이 ~몸에 익지 않은 운지라던가 해서~ 깨끗하게 연주가 안되는 경우가 쉽게 나옵니다. 연습, 또 연습입니다.
(즉흥 연주의) 연습 방법
즉흥 솔로 때 횡설수설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은 연습할 때에 '한계 설정'을 잘 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곡 멜로디에서 모티브를 중점적으로 따오며 따라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고, 코드 톤에서 타겟 음정 잘 고르기 → 타겟 음을 정해진 박자에 딱 딱 넣기 → 자유롭게 타겟 음들 사이를 메꾸거나 생략하면서 탐험해보기와 같은 것도 좋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지금 가장 좋아보이는 (= 하면 좋을 것 같은) 연습은, 곡을 문장처럼 끊어서 그 부분만 반복해서 해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첫 4마디를 반복시키면서 그 안에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실험해보고, 실제 적용을 할 때는 솔로의 인트로 부분일테니 이것을 어떻게 들어가고 시작을 끊어주는게 좋을지 같은것도 염두에 두면서 연구해 보는 거죠. 다른 분들의 솔로는 물론, 반주 역시도 다양한 버전으로 들어보는 것이 좋구요.
지금같은 초보 입장에서의 솔로는 4마디 정도의 섹션 별로 생각을 해도 되고, 그것도 아니면 한마디, 두 마디 씩 단위로 생각해서 (마치 짧은 문장들처럼) 어레인지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항상 느끼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마디에 붙잡혀있지 말기! 가 중요한데... 마치 파도나 바람을 타듯이 그 순간에 같이 어우러져야 하는데, 습관적인 문제인지 아직은 쉽지 않네요. 😅
지금 상태에서의 기록은 이 정도에서 마쳐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이 원만히 안정된 상태였다면, 모임의 다른 몇몇 분들처럼 10여년 씩 계속 다니면서 다지는 것도 한 방법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한번 쉬면서 숨도 돌리고, 다른 것들을 좀 둘러보고 챙겨야 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일과 관련해 밟아야 할 연수과정들도 있고, 운동도 더 이상 미루면 안되겠다 싶고, 자금 면으로도 더 저축해야 하고 등등 말이죠. (어른의 삶이란 참... 쉽지 않군요 😂)
재즈와 즉흥 연주 전반에 있어서도,
- 내가 지금 어디 쯤에 와 있고, 일정 수준에 다다르려면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 조금 더 입문용 과정을 거쳐 돌아오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지금의 모임에서 부딪혀가면서 배우는 것이 나을지?
- 이것이 정말 향후 음악적으로 내가 가고 싶어하는 길인지?
등등, 생각할 것들이 좀 있습니다.
음악적인 부분은 예를 들면, 간단한 커버 연주를 중심으로 가는 것도 있고, 자작곡을 조금씩 해보는 것도 있고, 기타와 피아노 등의 악기를 좀 더 배워보는 길도 있고 하기 때문에... 물론 나팔을 연주한다는 것 자체는 어느 정도 꾸준히 가져갈 거라 생각하지만요. 좀 더 탁 트인 곳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사실은 블로그를 잠정 폐쇄하거나, 간단한 커뮤니티 형식의 웹사이트로 전환하는 것도 꽤 전부터 생각중이긴 합니다. 지금까지 이르는 길이 저에게는 구속도 되고 도움이 되기도 했는데, 다른 분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남겼을런지, 하하... 당장은 아니더라도, 종종 다시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귀띔 남겨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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