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음대 (Sydney Conservatorium of Music) 는 1816년에 총독 관저용 마굿간(!)으로 지어진 건물을 개축하여 1915년에 개관한 곳입니다. 영국 중심의 초기 이주/정착기가 1788년에서 1810년이라 하니 정말 극초기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음악원이 지리적으로 보면 의아할 정도로 슈퍼 금싸라기 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그만큼 근본이 깊고 얼마나 호주 / 시드니가 문화에 대해 진심인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여타 음대나 음악 교육기관들도 있지만, 시드니 지역에서 음악교육원으로서 가지는 명성이나 상징성은 이 시드니 음대가 압도적입니다. 처음에는 독립적인 기관이었지만 이후 1990년에 시드니 대학과 합병하고, 97년에 주 수상이었던 밥 카의 지휘 아래 대대적인 개보수를 단행, 2001년부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오디션은 새로 지어진 오른쪽 건물에서 이루어졌는데, 둘러볼 시간이 없어서 탐방할 기회는 없었습니다만, 오래된 본관 건물도 공연 등의 용도로 아직 잘 쓰이는 것 같네요. 가는 길에 기차 안에서도 조금씩 입술을 풀고 쉬고 했는데, 도착해서도 10분 정도 여유가 있었던지라 내려가기 전에 잠깐 나팔을 꺼내들어 소리를 내보고 건물 안으로...!
오디션 안내 팻말을 따라 쭉 쭉 계단을 내려가서 직진을 하니...
교수님과 행정직원(?) 분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을 똑똑 두드리니 이름을 확인하고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브렌든 클라크라는 교수님이셨는데, 밝고 견고한 인상이면서도 사람을 참 편하게 해 주시더군요. 다른 분들도 계시려나 했는데, 혼자서 오디션을 보시나 봅니다. 이 날이 화요일이었는데, 이 분이 원래 화요일 반 담당이시거든요. 그냥 날짜 맞춰서 출근하신 건가 싶기도 하고...? 🤔
편한 자리에서 편할 때 시작하라 하셔서 의자에 앉아 주섬주섬 채비를 풀고 있으려니 이런저런 말을 걸어주십니다. 서로 편해지기 위한 아이스 브레이킹 차원이기도 하겠지만, 피차 서로 아는 바가 없으니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겠지요. 밴드활동이나 경험 여부도 물어보시고, 누구한테 배웠는지 같은것도 물어보셨는데 스튜어트 커완 선생님한테 간간히 레슨 받고, 레이 캐사와도 레슨은 안했지만 만나서 얘기는 좀 나눠봤다 하니 웃으면서 좋아하시더군요. 둘 다 아시더라구요. 덕분에 저도 약간 마음이 편해집니다.
재즈 스탠다드 뭐 불래? 하시길래, '아 솔직히 이번에 새 곡들로 익혀서 하려고 했는데 주말에 녹음해보니 구관이 명관이더라구요😂' 라 하니 어떤 것도 괜찮다고... 자기가 피아노나 드럼으로 같이 맞춰줄 수도 있는데 혼자서 할래? 아님 같이 할까? 하셔서 잠시 고민하다가 맞춰달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긴장도 덜 될거 같고, 애초부터 합주 하려고 간 것이니까요. 근데 아시는 곡으로 맞추려다 보니 결국 어째저째 오텀 리브스랑 마이 퍼니 발렌타인으로 연주하게 됐네요. 처음에 오텀 리브스 키를 물어보셔서 순간 머리가 하얘지긴 했는데... 어째저째 불어서 맞췄습니다 하하 😅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멜로디 불고 솔로도 함 해볼래?' 하셔서 "어... 곡 연주는 헤드만 하는 줄 알고 준비는 안했는데...;" 하다가, 눈이 초롱초롱하시길래 '그냥 흐름 타고 가보죠 뭐 ㅎ' 하고 OK 했습니다.
오 근데... 간만의 합주라서 즐거웠습니다. 제가 연주할때 눈을 감는 편이긴 한데, 자연스레 군데군데 포인트에서 서로 눈빛으로 맞추고, 리딩을 잘 해주셔서 솔로 마치는 타이밍도 깔끔했고, 돌이켜보면 다른 것보다 그냥 서로 호흡 맞춰가면서 합주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 기분 좋더라구요. 막 잘 하고 그런것도 아니지만, 솔로 분량까지 마치고 눈을 떠서 교수님이랑 딱 보는데 교수님 만면에 반짝반짝 화색이 돌길래... 속으로 '아, 이거 됐구나' 싶었습니다. 크크크
'통과한 거 같은데 이걸로 그럼 끝인가...?' 하고 있으려니, 다음은 뭐 할래? 하시길래, 이번에도 서너곡 얘기 나눠보다가 마이 퍼니 발렌타인은 쳐줄 수 있다고 하셔서 결국 마이 퍼니 발렌타인으로... 근데 이건 워낙 템포가 긴 곡이라서 그냥 헤드만 불고 더 안 불었네요. '이거 혹시 너무 느렸나요?;' 했더니 다행히 '아냐 아냐, 완벽한 템포였어'.
사실 뭐 불까 같이 고민할 때 보사 노바 류 곡들도 좀 생각나긴 했는데... 혹시나 솔로 해야되면 코드 같은게 너무 난해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ㄷㄷ 얘기 안했네요. 뭐가 어떨지 모르는 경우엔 역시 최대한 친숙한 곡으로 해야...
마지막으로 블루스 연주는 드럼으로 맞춰줄테니까 아무거나 불라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임의로 나오는 반주에 맞춰서 연주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었는데, 완전 잘못 짚었습니다. 와 그런데:
준비하던 막바지에 이걸 집중해서 본 게 하늘이 준 기회였다는 생각이... 정말 이 영상 덕분에 살았습니다. 백스 그루브 (Bag's Groove) 한 곡에 맞춰서 진행하는 영상인데 곡 자체도 익숙하고 조나 진행도 쉬운 편이고 해서요. 하 참... 이 오디션에 딱 맞는 답이었던 거죠. 애초에 '블루스 곡 뭐 아니?' 하는데 저는 블루스 쪽은 딱히 관심이 없었어서... '어떤 곡이 블루스다' 라는 레파토리 자체가 없었거든요(...). 이 곡도 제목이 생각 안나서 노래로 흥얼거리니까 '아 그거 좋지' 하셨던... 초장부터 노답이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말입니다 휴...! 😂 하여튼 헤드 짤막하게 불고, 대충 리듬이랑 조에 맞는 블루스 스케일 위주로 솔로까지 마쳤네요.
오디션 과정을 대략 마치고 무슨 요일이 좋을지 잠깐 얘기 나눴는데, 애초에 월요일 아니면 화요일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일정 상 주말에 집중해서 준비하고 주 초에 가는 것이 수업 쪽으로나 업무 쪽으로나 좋을거 같아서요. 월요일 반은 프로그램 전체를 총괄하는 드러머 교수님이 담당이시라 이 쪽도 참 좋겠다 했는데, 브렌든 교수님도 베이스 전공이라 악기적인 메리트도 떨어지지 않고... 무엇보다 성품이랑 인상이 참 좋으셨어서, 좋아보이지만 불확실한 것보다 만나봐서 확실히 좋다고 느낀 브렌든 교수님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조금 갈팡질팡 했는데 결국엔 월, 화 이틀 중에 하나로 주시면 좋겠다고 했네요.
인사를 마치고 오디션 방을 나서는데, 다음 오디션을 보러 웬 동양인 남성 분이 트럼펫을 들고 떡하니 서 있는 겁니다. 헉...ㅋㅋㅋㅋ 순간 동업자 의식과 라이벌 의식이 반반 섞인 거 같은 감정이 일어나는데, 저 사람은 어떠려나 엄청 궁금하더군요. 밖에서 엿듣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기는 했는데, 방 밖에는 행정직원 분도 앉아계시고... 괜히 안좋은 인상 심어줄까 싶어서 깔끔히 포기하고 나왔습니다.
연락은 바로 왔는데, 교수님이 좋게 봐주셔서 본인이 담당하는 화요일 반으로 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더군요. 일단은 해냈습니다 😎 사실상 평생교육원 개념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쁘네요.
한 반(=밴드)은 대여섯명 전후로 이뤄진다고 하는데, 돌아오는 화요일부터 시작이라 다른 멤버들은 어떨지, 수업은 어떻게 진행될지 기다려집니다. 8주 과정을 거치고 마지막에는 오픈 공연이 있다고 읽었는데 이건 또 어떠할지...? 나중에 또 소식 업데이트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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