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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음악/듣는 것들

<싱어게인3> - 소리와 음악에 대한 생각들

by J.5 2023. 11. 11.

그제 밤부터 JTBC의 <싱어게인3>에 나온 곡들을 듣고서는 황홀경에 빠져 있습니다. 그동안 오디션 프로들이 그렇게 범람했는데도 어디서 이런 '찐' 분들이 계속 나오시는지, 와...

하긴 <싱어게인>은 '다시 나선다'는 포맷상 단순한 오디션이라기 보다는 상호 리스펙트가 갖춰진 무대이긴 합니다. <나가수>에서 <불후의 명곡>으로 포맷이 바뀌어 인기를 끌었듯... 이 곳에서 심사위원은 위에서 평가를 한다기 보다는, 귀 호강하면서 즐길 수 있는 자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측면에서 심사위원석을 보통 하듯이 권위적으로 윗줄에 올려둔 것은 조금 미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애니와 게임 OST를 좋아하는데, 오리지널 곡으로도 좋은 시도를 많이 했던, 소위 '투니버스의 리즈 시절'을 경험한 세대들을 통해 이런 애니OST의 힘이... 20여년이 지나 이제서야 사회에 인식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밤늦게 이 노래가 뜬 걸 보고 잠을 못자고 몇 시간동안 들으면서 눈물이 나오더군요.

질풍가도를 불렀던 유정석이 한동안 활동을 못한 이유 (링크)

질풍가도를 왜 부르는 거야? (링크)

운칠기삼이라고 하죠? 살면서 자주 보기 힘든 기적의 무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유정석 씨 본인도 신체적 건강함은 원곡 녹음할 때가 더 짱짱하셨겠지만, 노래를 부르시는 힘은 음반에서보다 더 좋아지셨더군요.

곡을 시작할 때 힘이 온전히 들어가지 않은 느낌이나, 중간중간 박자가 흐트러지는 것 등을 보면 실제로 긴장을 많이 하신 것이 맞다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반주가 나오니까 몸이 기억하듯, 리듬 따라 오른발을 옆으로 벌리면서 지면을 딱 밟으시고, "한 번 더-"에서 처음엔 힘이 다 들어가지 않았다가 일렉기타로 드라이브를 걸듯이 콰아악 올라가는 그 느낌이...! ㅜ.ㅠ

곡의 마지막에 가서는 살짝 힘이 부치시는 모습도 나오지만, 그런 모든 것을 포함해서 너무 감동적인 무대가 된 것 같습니다. 심신이 무너질만한 비극에 폐인이 되고 15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셨지만...

한 번 더 나에게 질풍같은 용기를...!

소위 말하는 '땜핑(damping)'도 엄청 단단하시고, 같은 창법이라도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 다르기 마련인데 유정석님의 소리는 일렉기타 같으면서도 꾸밈없이 스트레이트하고, 무엇보다도 따듯한 힘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가수가 자기 곡 따라 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모습을 실제로 체현해 보여주시는 것 같아서 너무 뭉클했어요. 이 곡을 듣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더군요. 이런게 음악의 힘이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다음날인 어제 밤에는 또 다른 충격적인 보컬 분을 보았습니다. '신촌블루스'의 강성희 님.

'파충류 뇌 (Reptile brain)'라고 하죠? 지금까지도 참인 명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인상깊게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청각은 파충류 뇌의 영역이라 몸이 더 본능적으로 반응한다"라는 것이었는데, 이 분은 충격적이었던 게... 사람의 생존본능이랄까요? 나나 누군가의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털이 쭈뼛 서게 만드는 소리를 내시더군요. 코드 쿤스트가 칼에 목이 베인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나, 댓글 중에 음파 무공이라는 말이 나오는 등... 아마 제대로 된 시청환경에서 들은 분들이라면 비슷하게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완전히 국악 류의 소리는 또 아닌것 같고 + α가 있는데... '아니 어떻게 이런 소리를 내는 거지?' 하면서 경악하는데, 심사위원들이 짓는 그 표정이 들으면서 똑같이 지어지더라구요. 자기만의 소리를 이 정도로 갈고 닦았다는 측면에서는 심사위원들 중에서도 임재범 정도가 아니면 소리에 대해 논할 사람이 없어 보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한의 정서'가 이런 것인가 싶고... '한국의 소리'란 이런 것이다. 라고 외국인들에게 소개한다면 이 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계속 듣다보니, 우리가 악기를 찾고 바꾸는 것도 이래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저런, 털이 쭈뼛 서게 만드는 고음에서의 쩌렁쩌렁한 울림과 강렬한 음색, 단단함, 압박감(?)이랄까... 칼리키오 1S/2가 사랑받았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 아닐까 싶네요. (저는 그런 측면을 살릴 수 있는 연주는 못 합니다만... 크흑 😂)

그리고 <싱어게인3> 프로에서 음향 쪽을 맡으신 분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제대로 하는 분이구나 싶더군요. 무대에서 노래를 하기 전에 모든 분들이 마이크로 소리를 테스트하는 장면에서도 보여지지만, 소리가 너무 잘 잡혀서... 특히 위의 경우들에서 보듯 보컬의 역량이나 미세한 뉘앙스를 다 캐치할 수 있도록 표현해주는 게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이런 방송들에서 놓치기 쉬운 부분인데, 평상시의 기준 음량을 상당히 낮게 (소리가 작게) 잡아놓고 그 만큼 소리의 다이나믹 폭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신의 한 수다 싶더군요. 현대로 올수록 소리를 계속해서 크게 잡는 것이 유행이라서, 대략 1980년대 이전의 것들이나 클래식 계열이 아니면 레코딩에서도 이런 다이나믹을 보는 것이 어렵거든요. 평상시의 소리를 작게 하면 듣기에는 불편해지지만, 음악에서 볼륨이 8에서 10 사이라면 그 낙차폭이 2밖에 느껴지지 않지만, 볼륨이 2부터 10까지를 오간다면 그 낙차폭이 8의 크기, 즉 그전보다 4배로 크게 실감 나니까요. 이런 면에서의 밸런스도 대단히 잘 잡혀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소리가 구시대적인 것도 아니구요.

오디션 프로그램을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만, 이번 프로그램은 위의 두 분과 16호 (호림) 같은 분들을 보니 다 감탄스러웠어서 앞으로도 틈틈히 챙겨보게 될 것 같습니다. 소리에 대한 고민도 깊어져 가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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