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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기기/Speakers

AKG K371 헤드폰 (+ 브랜드별 성향 정리)

by J.5 2021. 7. 7.

호주로 온 뒤 아직 제대로 된 터전을 마련하지는 못한지라 오디오나 스피커 시스템은 장만하지 못합니다만, 그래도 천성(?)은 어쩔 수 없는지 야금야금 녹음부터 모니터링까지 가능하도록 물건들을 구비 중입니다. 가장 첫번째로는 헤드폰:

최근까지는 슈어의 SRH-440을 사용했습니다. 사실 저는 오디오 시스템은 기기당 수백만원 하는 정도까지는 써보았지만 헤드폰은 거의 모니터링 참조 용도로만 사용했기 때문에 대략 20만원 정도 선에서만 사용해 왔습니다. 윗급 모델들도 기회가 있을때 들어보기도 했습니다만 뭐랄까... 굳이 그렇게 큰 돈 주고 구입할 메리트를 못 느끼는 입장입니다. 나중에 여력이 있다면야 윗급으로 옮길 수도 있겠습니다만...^^

오디오 제조사들에게서 제가 곧잘 느끼는 것은, 각 브랜드마다 본인들이 추구하는 소리의 모델이 있다는 겁니다. 주파수 응답 그래프가 비슷해도 막상 들어보면 생각보다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죠. 플라시보 효과라고 하신다면 굳이 반론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경험적으로 느꼈던 브랜드 별 성향을 간략하게 한줄씩만 적어봅니다.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 베이어다이나믹: 단단함 + 중립 - 슈어에 비하면 약간 더 대담/돌출된 소리
  • 슈어: 단단함 + 중립 - 베이어다이나믹에 비하면 반발짝 뒤로 물러선 느낌. 녹음 스튜디오 같은?
  • 젠하이저: 풍성하고 윤택한... 기름진? 성향
  • 비츠/닥터드레: 베이스 바보 + 럭셔리 마케팅
  • 소니 & 오디오테크니카: 듣기 좋음. 어느정도 가식적인 소리. 중역이 바삭바삭 맛깔나지만 극단의 자극과 기름을 좀 뺀 소리. 오디오테크니카가 조금 더 전문적이고 오디오파일적인 이미지이기는 하지만, 큰 흐름에서는 비슷.
  • 그라도: 오픈 + V형 - 가장 음악적인 감흥이 큰 소리. 취향에 따라서는 너무 격하게 들릴지도?
  • AKG: 성마른 소리. 중고역을 핵심으로 둔 듯한데 호불호가 극단으로 갈릴 느낌. (젠하이저의 반대편?)

대략 이 정도입니다. 

AKG는 옛날에 청음만 조금 해보았는데, 어우 이건 나랑은 아니다 싶어서 손사래를 쳤던 브랜드입니다. 주류 헤드폰 회사들 중에 베이어/슈어/젠하이저/그라도는 소장 경험이 있는데 이번에는 안해본 놈들 중 골라보자 해서, 오디오 테크니카 ATH-M50x 평이 좋길래 하나 살까 했는데, AKG-K371을 그것보다 윗급으로 치는 시선들에 이런저런 평가들을 보니 구미가 동해서 막판에 갈아탔습니다.

한가지 우려는 사용자 리뷰들 중에 착용시 잘 안맞을 수 있고, 그런 경우 음질 차이가 상당히 심하다는 평가였는데... 저는 딱히 모르겠더군요. 사실 리뷰들 중에 음향감독 김태범이란 분이 하신 리뷰가 있었는데, 리뷰 내용을 떠나서 두상이 어느정도 있으신대도 ('20만원 언더 종결 가능!')이라며 좋게 평가하시는 것을 보고 '아, 이정도면 나도 착용 문제는 없겠다' 싶어서(...) 괜찮겠거니 하고 샀습니다. 저도 딱히 좁은 두상은 아닌지라... 😅 (물론 귀의 크기나 각도 같은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매력적으로 느꼈던 부분은 모니터링 용도로 상당히 좋다는 평가가 여러 곳에서 나온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영문 사이트인 사운드가이즈의 리뷰 도중에 이 말이 딱 꽂히더군요:

AKG가 보여주는 소리의 특성은 음악 대부분의 근간을 이루는 200Hz~1.5kHz 범위를 통틀어 극도의 정확함을 보여준다. 

AKG’s reference sound signature is extremely accurate through the 200Hz-1.5kHz range, which is where nearly all the fundamentals of your music fall.

이 말이 참 마음에 들어서 주문 고고고~!

온라인 상으로 사진만 봤을 때는 디자인이 너무 단순하고 싸구려틱한거 아닌가 했었는데... 막상 실물을 접해보니 만듦새나 품질이 훌륭하더군요. 소재도 그렇고,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럽게 잘 만들었구나 했습니다. 

요즈음 대세로 보이는, 탈착 가능한 3종 케이블이 동봉되어 있는것도 좋고, 착용감이 가볍고 편한 것도 장기간 사용시에 분명한 플러스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컵을 8단계에 걸쳐서 뒤쪽으로 180도 돌려 접을 수 있게 해 놓았는데, 아래 사진처럼 반쯤 돌려놓고 머리에 고정시킬 수 있다는 게 녹음하는 입장에선 은근히 꿀입니다. 스스로 내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한쪽 귀는 열어놓고 녹음하는 분들이 꽤 많으신데, 헤드폰을 사용하는 경우 이럴 때에 난감해질 경우가 많거든요.

모자란 행동같아 보이지만 녹음할 때는 의외로 강력한 장점 (사진출처 SoundGuys.com)

그리고 직접 들어본 결과, 저도 위 사운드가이즈 리뷰의 평가가 전반적으로 꽤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고역의 AKG스러운 캐릭터는 없어지지 않았지만, 디테일을 듣기 좋게 띄워주는 정도 이상으로 심하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핵심 대역은 플랫하게 잡아놓고 양쪽 끝단을 좀 틔워놓은, 말하자면 V자보다는 접시형 (\____/)그래프 느낌이네요. 아무래도 저음보다는 고음쪽이 살짝 더 올라와 있습니다만, 저음도 타이트하게 잘 나옵니다. 소리에서 기름기를 뺀 AKG 고유의 성향은 살아있지만, 예전처럼 극단적이지 않은 느낌?

말하자면 AKG는 육포같은 겁니다. 예전에는 겉에 허연 가루가 보일 정도로 바싹 말라붙어 있었는데, 이 녀석은 그래도 고기가 어느정도 말랑말랑하고, 촉촉함도 좀 남아있는 육포같은 거죠. 여기서 싱가폴 육포처럼 좀더 기름지고 양념을 바르면 소니/오테... 베이어/슈어는 생고기... 젠하이저는 익힌 고기! 비츠는 스팸!! 음색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크게 두가지인데:

  • 저역은 상당히 아래쪽 (우르릉) 까지도 윤곽을 깨끗하게 그려내는 편이지만, 중저역대에서 '펑' 하는 타격감을 주거나 울림을 주는 부분은 ~아마도 의도적으로~ 눌러 놓았기 때문에, 이렇게 펑펑 뱅잉(Banging)하는 느낌이나 혹은 자연스러운 울림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별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의 간섭을 죽임으로서 나머지 전체적인 대역에서의 정확함이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난다고 생각이 듭니다.
  • 밀폐형 + 이런 음색 특성 덕분인지, 어느 정도 볼륨을 확보하기 전에는 중역대가 조금 눌린 듯이 들릴 수도 있습니다. 오인페(SSL2)의 헤드폰 앰프 힘이 낮은 볼륨에서는 부족한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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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을 하자면 모니터링 용도로도, 음악감상 용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소위 '종결' 이라던가 '골든 레퍼런스'라던가 하는 범주에 속하는 제품은 아닙니다. 전 대역에 걸쳐서 평탄한 응답을 보여준다거나, 극히 자연스러운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제품의 완성도가 높다는 것은, AKG 특유의 개성은 간직하면서도 이 제품이 구현하고자 한 어떤 밸런스라던가, 그 총체적인 결과물이 굉장히 설득력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20만원 언저리에서 가성비 좋으면서도 개성적인, 특히 중고역의 칼같은 해상력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저처럼 모니터링 기기들 중 하나로 참조하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흔쾌히 추천 드립니다.

(어쩐지... 쓰고 보니 남는건 고기에 대한 비유밖에 없는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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