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인 진보와 여러 사람들의 해외 유학에도 불구하고, 관악기의 녹음과 믹싱에 있어서는 한국이 아직도 많이 뒤쳐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진영 (진킴) 님의 앨범은 락/메탈 쪽으로 유명한 분과 협의해가면서 하셨다고 하는데, 확실히 아티스트 본인이 조율해가면서 해서 그런지 괜찮았지만, 제 서울 선생님의 경우는 앨범을 들어봤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엔지니어 분께서 '어떤 소리가 나야 되는가'에 대한 확고한 상(像)이 없으신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런 레코딩과 믹싱의 문제는 결국 듣는 귀에 따라 좌지우지 된다고 봅니다. 프로 엔지니어를 하실만한 분들이면, 기술적인 부분에서 딱히 해외 분들보다 크게 뒤쳐지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엄밀히 말하면 관악기로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고, 그 음악에 맞는 '맛'을 아느냐 마냐의 문제인데... 한국은 대중가요에 어울리는 사운드에만 편중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심지어 음악이 어쿠스틱할 때에도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일례로 '볼빨간 사춘기' 노래들을 들어보면 안지영씨 보컬을 돋보이게 하려고 하는데 제 기준에서는 너무 과합니다. 음량이건, EQ건...) 물론 국내에서 제작되고 소비되는 음악의 메인스트림이 그러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요인이겠지요. 자주 듣고, 테스트 해보고, 경험을 쌓고, 피드백을 받고 할 여건이 안되니까요.
제가 ~한정된 경험 속에서~ 이런 인상을 강하게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수리기사 분부터 프로 엔지니어 분들까지... '리본 마이크'가 뭔지를 모르시더라구요.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마이크는 '다이나믹'과 '컨덴서', 딱 두 종류인것 같습니다. (사실 프로 엔지니어 분들 정도 되면 모를 리는 없을 겁니다. 개별적으로 '아~ 그 마이크' 하면서 알고는 있는데, 평소 쓸 일이 없으니까 '리본 마이크' 라는 한 섹터를 평소 인지하고 있지 않은 거겠지요.)
적어도 영미권의 경우, 관악기 - 특히 트럼펫 - 을 녹음한다고 하면 대개 리본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2차적으로나 혹은 라이브 상황일 경우 다이나믹 마이크를 사용하고, 일반적으로 컨덴서 마이크는 섬세한 성향상 알맹이가 가볍고 날카로운 소리가 나기 십상이라 기피합니다 (물론 모델이나 환경, 테크닉에 따라 변수는 항상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분들은 이 컨덴서 소리를 너무 사랑하는것 같아요. 리본 마이크 한번 수리받은 적이 있는데 기사분이 그냥 대놓고 그러시더군요. '마이크 안 좋아요' 라고... 그냥 웃고 말지요. 그 분이 듣기엔 감도도 안좋은데 소리도 마냥 답답하기만 했을 겁니다.
※ 단, 컨덴서 마이크 중에 노이만(Neumann)의 KM54나 소니 C37 등의 진공관(튜브) 컨덴서의 경우 리본보다도 뛰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사실 자료는 널려 있습니다. 유튜브에 가서 'trumpet mic shootout' 이라고 검색해보면 참고할만한 영상들이 많이 있는데, 여기서 직접 하나씩 비교해가면서 들어보고 마음에 드는 마이크를 고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물론 MR에 소리를 앉힐 때 블렌딩이 잘 되느냐는 또 별개의 문제지만요... 이건 직접 겪어보고 해봐야 아는 부분인지라 미리 뭐라고 하기가 어렵군요 ㅜㅠ
아마도 연주영상 등에서 가장 자주 보실만한 마이크는 다음 셋입니다 (가격은 미국의 sweetwater.com 기준):
Royer R-121 $1295 방식: 리본 마이크 수음 패턴: 피겨8 |
Sennheiser MD 441(U) $899 방식: 다이나믹 마이크 수음 패턴: 슈퍼-카디오이드 |
Electro-Voice (EV) RE20 $449 방식: 다이나믹 마이크 수음 패턴: 카디오이드 |
자 여기서 주의할 점 한... 아니 몇 가지!
- 무조건 더 비싸다고 좋은 건 아니다. 용도와 환경, 취향 등을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적어도 샘플이던 직접 녹음이던 자기 귀로 들어보고, 각 마이크의 성향에 대해서 나름대로 판단이 설 정도는 되어야 한다.
- 좋은 녹음장비를 쓰면 소리가 더 좋게 들릴 가능성은 높아지지만, 그 이전에 연주가 구리면 구린 티가 확 난다(...). 요는 더 '정확'하다.
- 같은 장비라도 녹음 테크닉과 후처리 등에 따라서 결과물은 천차만별로 나올 수 있다.
리본 마이크에 관하여
리본 마이크가 정석이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곳에서의 스튜디오 녹음이 아니면 그렇게까지 사용이 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1) 리본 마이크는 덩치도 큰데다가 충격을 입으면 파손을 입기가 쉽고 (위의 로이어 R121 같은 경우 이런 부분에서 상당한 개선이 이루어진 것이 장점 중 하나입니다), 2) 보통 앞뒤로 수음이 되기 때문에 (피겨8 패턴) 주변 소리가 섞여들어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라이브 상황이나, 음향처리가 안된 일반적인 공간에서의 녹음 등에서는 한 방향으로만 수음을 하는 카디오이드 패턴의 다이나믹 마이크들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소리 측면에서도 리본 마이크는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반면 (인간의 귀와 가장 흡사한 구조라고 하더군요), 다이나믹 마이크는 조금 더 다부진 성향입니다. 위의 젠하이저 MD441과 RE20 역시도 둘다 중립적이라면 중립적이지만, 음색에서 서로간에 분명한 차이는 있습니다.
좀 더 전형적인 리본 마이크는 아무래도 '빈티지'의 인상으로 사람들이 많이 기억하는 것 같더군요. 맨 윗 사진의 AEA R84 ($1099), 그리고 영국제인 Coles 4038 (유럽가 £999, 미국 구입시 $1365) 같은 마이크들도 트럼펫 녹음용으로 언급이 자주 됩니다. AEA의 경우 구 RCA 사의 명맥을 이어서 복각 버전도 많이 만드는것 같네요. 이 외에 일반적으로 손에 들고 쓰는 형태인 바이어다이나믹(Beyerdynamic)의 M160 (유럽가 £385, 미국 $610)같은 것도 쇼트 리본 마이크이구요.
리본 마이크의 경우, 자연스러운 만큼 후보정을 거치지 않으면 MR 등의 믹스를 뚫고 나오는 힘이 조금 부족할 수 있습니다. 즉 EQ 조정이 필요한데요, 그 반면 대체로 EQ가 굉장히 잘 먹는 편에 속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성향이 가진 장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전문 엔지니어들의 경우 대개 완성본이 나오기까지 EQ와 기타 후작업이 어느 정도는 들어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리본 맛을 좀더 저렴하게 보고 싶다면:
위에 나열한 유명한 리본 마이크들의 경우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을만한 것들이 있는데요, 하나는 요새 뜨고 있는 sE Electronics 의 X1R 마이크입니다. (가격 $229)
16:43부터 sE Electronics X1R, 그 바로 뒤인 17:30부터 컨덴서 버전인 X1S 입니다. 리본과 컨덴서의 차이를 보시기에 괜찮으실 것 같네요 :)
또 하나는 AEA R84를 모방한 중국제 리본 마이크의 개조 모델들인데요, 이 녀석이 품질관리는 엉망인데 기본적인 구성은 상당히 괜찮았는지, 2000년대 중반 즈음부터 미국에서 개인제작자나 소규모 회사 등지에서 개량한 모델들이 우후죽순 쏟아져나왔습니다. (2008년자 참고 글 링크)
제가 구입할 당시에는 샤이니박스의 개조버전이 상당히 좋아보였는데 가격을 슬슬 높이길래 대안으로 캐스케이드(Cascade) 사의 빅터(Victor)라는 모델을 구입하고 지금까지도 쏠쏠히 사용했었네요. 현재는 스웨덴 회사인 골든에이지 프로젝트 (Golden Age Project) 의 R1 시리즈가 가장 잘 나가는 듯 합니다. 현재 샤이니박스는 가격대가 상당히 올라갔고 (약 $450), 캐스케이드 빅터는 단종, 골든에이지 프로젝트의 경우 모델에 따라서 $190~$230 정도 하네요.
아반톤의 CR-14 마이크 역시 이렇게 저렴한 중국제를 베이스로 추가 검수 + 리브랜딩 된 마이크입니다. 이 마이크는 국내에서도 미국 직구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으니 한번 고려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해외로 눈을 돌리면 다양한 모델들이 있으니 하나씩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지 모릅니다 :) 리본은 태생이 바람 / 충격에 예민하니 저렴한 모델이라고 함부로 다루지는 마시길!
마지막 대안! 전세계의 국민 마이크 슈어(Shure) SM58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마이크인 슈어(Shure) 사의 SM58 역시, 10만원 내외의 가격으로도 충분히 좋은 마이크가 될 수 있습니다. 악기 용이라면 보통 여기서 뚜껑(그릴/팝필터)를 떼어 낸 느낌의 SM57을 많이 사용하는데, 리본 마이크와 같이 쓰는 것이 아니라면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SM57 역시도 다이나믹 마이크이기는 하지만, 중고역의 선명함에 초점을 둔 마이크라서 소리가 밝은 성향을 띕니다. (이 특성을 살려서 자칫 소리가 어두워질 수 있는 리본 마이크랑 같이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더군요. 특히 기타라던가.)
SM58 으로 녹음하는 데에 있어서 개인적인 팁이라면 이 대가리(?) 부분을 빼고 사용하는 겁니다. 플라시보 효과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칫 답답하거나 금속에 공명할 수 있는 소리에 조금이나마 자연스러운 숨통을 틔워줄 것입니다. 저는 상당히 오랫동안 이렇게 해서 녹음해왔는데, 가끔 캐스케이드 빅터로 동시 녹음을 해서 악기나 공간의 소리를 풍성하게 채워준 적도 있지만, 아무래도 후작업 시에 변수가 복잡해지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가장 간단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SM58의 소리 경향은 소리를 단단하게 가운데로 모아주기 때문에 결과물이 크게 빗나갈 일은 없습니다. (다만 이런 특성상 플라스틱 파이프 음색(?)이 두드러지기 쉬운 편이기도 합니다.) 동사의 또다른 인기 마이크인 SM7B의 경우 모아주는 성향이 더 극대화되어있는데, 방송 토크 용으론 좋지만 저는 너무 답답한거 같더군요.
번외편: 클립온 / 핀 마이크
거치형 마이크 외에도, 주로 라이브 무대용으로 벨에 끼워서 사용하는 소형 마이크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모델 4가지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녀석들은 개인적으로 제가 크게 관심이 없고 샘플들이 충분하지 않은지라 섣불리 평가를 하기는 어렵고...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순서대로 적도록 하겠습니다.
- AMT P800 시리즈: 쿠옹 부 (Cuong Vu), 알렉스 시피아긴(Alex Sipiagin) 등이 사용합니다.
- Shure Beta 98H/C (슈어 베타 98 혼클립): 크리스 보티가 보스턴 라이브에서 사용한 마이크입니다.
- DPA 4099T: 랜디 브레커 (Randy Brecker) 옹의 연주를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 SD Systems LCM 77: 마일즈 데이비스 옹이 썼다고 하고 뮤트 사용의 자유로움이 있기는 한데 제 느낌엔 영...?
※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클립온 / 핀마이크의 경우 셋트로 보통 같이 사는 여타 장비들 (프리앰프/리시버, 케이블 등)과의 매칭에 따라서도 소리 특성이 변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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