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마하기/생각 다듬기 & 팁

레슨과 레슨 선생님에 대해

by J.5 2017. 8. 27.

오늘은 잠깐 트럼펫 레슨에 대해서 써 보고자 합니다. 모 커뮤니티에서 레슨 받는 것에 대한 글들을 보고서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을 잠시 정리해 봅니다. 개인적인 견해라는 것은 일단 밝혀놓고 시작하겠습니다^^ 민감할 수 있는 주제이니만큼 진지한 지적이나 토론은 기쁘게 받고 또 반영하겠습니다.


※ 바쁘신 분들은 아래의 3번 글 정도만 읽으셔도 괜찮습니다.


트럼펫 독학

일단 트럼펫은 독학이 어려운 악기입니다. 결국은 스스로 해야 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독학'이란 단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애매한데, 여기에서는 '정기적인 레슨을 받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겠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틈나는대로 주변을 찾아다니면서 배우고자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대가들 중에서 독학파로 유명한 바비 슈같은 경우 역시 초등학교 밴드에서 트럼펫을 시작하였고, 음악캠프도 가 보고, 나중에 리드 트럼펫을 맡게 되었을땐 버드 브리스보아(Bud Brisbois)와 메이나드 퍼거슨을 찾아가 배움을 청했습니다. 다만 바비 슈 같은 경우, 어록들을 들어보면 분명히 다른 분들과는 확연히 다른, 내면중시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건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도록 하죠.


저같은 경우는 처음 트럼펫을 접했을 때 해외에서 석사 학위 도중이었기 때문에 (졸업작품에 실제 트럼펫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구입했습니다) 전혀 트럼펫 교습을 받을 여건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구입 시에 가게 주인분께 들었던 'M~ 하고 후 불어봐라', 이후 지역 사회의 오케스트라에 한번 가본 것이 전부였지요. 한국에 들어온 이후에는 베누스토와 트럼펫터 서울지부 (現 서울 트럼펫 콰이어로 독립) 등을 거쳐 현재는 트럼펫터 군산지부와 서울의 선생님에게서 정기적으로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0. 일대일 레슨 vs 단체 모임 vs 독학

취미가부터 전공생, 프로 분들까지 그동안 만나보며 느낀 것은, 실력 함양에 있어서 1:1 레슨과 단체 레슨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트럼펫 레슨'에 대한 이해도와 이어지는 부분이기도 하고, 본인의 목표나 열정이 어디까지인가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단체모임의 경우, 자의로든 타의로든 평소에 나팔 부는 시간이 없는 회원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배우는 경우, 잠깐이라도 집중력 있게 원포인트 레슨(피드백, 팁 등)을 받는 것만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단체 레슨의 경우에도 짬짬이 1:1로 시간을 내서 신경을 써 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이럴 때는 본인 노력에 따라 1:1 레슨보다 더 높은 효율을 취할 수도 있겠지요.


즉, 일반적인 경우 [ 1:1 레슨 > 단체 레슨 > 독학 ] 순서대로 효과가 큽니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 입니다. 트럼펫은 자발적으로 연구하고 능동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악기라서, 궁극적으로는 이런 구분이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3번 란에서 좀 더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1. 어떤 선생님을 찾을 것인가?

일단은 어떤 방식으로든 (즉 프로냐 언더냐, 단체냐 개인이냐, 정규적이냐 비정규적이냐 등은 일단 떠나서) 현역으로 연주활동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이 더 좋습니다. 지금은 연주활동을 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왕성하게 하셨던 분은 얼마나 배울게 많을지에 따라 다르겠구요, 그 다음은 현재 전공을 하고 있는 전공생이나, 전공 졸업 후 레슨만을 전문으로 하는 분들이 되겠네요.


이는 활동중인 선생님들의 경우, 주변과의 교류나 본인의 연구 등으로 인해 '살아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쪽 음악계가 어떤지, 트럼펫이나 트럼펫 부는 법 등에 대해 요즘 오가는 이야기가 어떤지, 트렌드는 무엇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컨셉은 무엇인지, 레슨 때에 직접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다 반영이 됩니다. 나아가서 본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섰을 경우, 나아갈 길을 보여주거나 직접 소개해줄 수 있을 가능성도 보다 높습니다. 단순 비유하자면 흐르는 물과 고인 물의 차이입니다.


물론, 레슨만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클린트 '팝스' 맥러플린 같은 분은 직접적인 연주보다는 트럼펫 교습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인지도도 있는 분인데, 프로 분들도 가서 배우고 큰 효과를 봤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가르침의 대가'로 인정받는 분들은 또 다른 이야기지요. 다만 가르침에 큰 뜻 없이, 단지 생업을 위해서 가르치는 분들의 경우는, 의욕이나 기량이 활동하기에 충분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배울 점들은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메리트는 떨어지겠지요.


반대의 경우는 체육계로 비유하자면 '좋은 선수가 꼭 좋은 스승은 아닌' 경우이지요. 이런 부분을 고려하실 때에는, 그 선생님이 가르친 제자들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은 트럼펫 '선생님'으로서의 검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자기 자신의 지향점이나 성향도 스스로 자각이 필요합니다. 물론 기초를 다지는 단계는 장르를 불문하고 모두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보편적으로 접할 수 있는, 클래시컬 트럼펫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은 기본기를 다지는 데에 더없이 좋습니다. 그러나 다른 장르, 혹은 클래식 안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을 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2. 믿기로 했으면 믿어라 (그리고 일단 해라!)

어디에서 보았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신중하게 고르되, 한번 정했으면 끝까지 믿으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레슨 선생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상하다, 내가 보기엔 아닌거 같은데...' 하면서 갸웃 갸웃, 혹은 기웃 기웃하는 식으로도 레슨은 받을 수 있습니다만, 과연 이렇게 해서 효율이 날까요? 그것이 결과적으로 자신과 맞지 않더라도, 따를 때에는 철저하게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면, 주법의 경우 선생님들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법이란 것은 단순한 입모양(암부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호흡의 사용과 입 안의 형태, 혀의 움직임, 생각하는 것까지 다 포함되는 총체적인 것입니다. 선생님이 주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가르치는 스타일일 수도 있고, 아니면 드러나는 소리나 지향점, 혹은 무엇을 연습할지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자세한 부분은 학생 본인이 깨닫고 다지도록 맡기는 스타일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에건, 적어도 그 선생님은 자신이 사용하는 하나의 주법에 대해서는 그 총체적인 시스템 전반에 대해 완성된 틀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미국쪽 트럼펫 교습법을 예로 들면 [허버트 클라크-클로드 고든]으로 이어지는 라인과, 카마인 카루소, 빌 애덤, 제임스 스탬프, 찰스 콜린 등등의 스타일을 보면 서로 다르거나 심지어 완전히 상반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각종 버징이나 페달톤, 암부셔 등에 대한 중요성 혹은 생각 등등... 그러나 이 모든 교습법들은 모두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또 인정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해 보는 것입니다. 어떤 수준에서 레슨을 받던지 필시 겪게 될 한가지 현상은, 처음에는 선생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아리송하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 어느 순간 '아, 이 말씀이셨구나!' 하는 때가 분명히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레슨 선생님을 구할 때에는 충분히 본인이 배우고 싶다, 모방하고 싶다던가, 아니면 적어도 어느 특정 부분만큼은 정말 인정하고 배우겠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물론 선생님의 방식이 본인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은 해 보고, 신중하게 생각하신 뒤에 정 아니다 싶거나, 이제는 다른 분을 찾아가 봐야겠다 싶으면 그리 말씀하시고 쿨하게 떠나십시오. 트럼펫 레슨이 서로 파벌을 세워서 다른 사람한테 배우러 찾아가면 "너 배... 배신이야!!" 하는, 무슨 무협이나 조폭 세상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3. 레슨은 증명하는 곳

2014년 월드컵 대표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이야기하자, 당시 이영표 KBS 해설위원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증명하는 자리다."


저는 요 근래 이 말이 불현듯 떠오르더군요.


초반을 제외하면, 트럼펫 레슨은 가서 뭘 새롭게 듣고 학습하는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그동안 자기가 뭘 어떻게 했는지 증명하는, 보여야 하는 자리입니다. 저는 개인레슨 받으러 가서 딱 앉으면 그 날의 레슨은 대개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선생님: "뭐 연습했냐?"

대답: "아 네, 이번엔 어쩌고 저쩌고..."

선생님: "불어봐"

대답: "네" (연주)


그럼 이제 거기에서 선생님이 지적할 부분이나 조언을 말씀해 주시고, 도움이 될 연습법이나 생각 등을 가르쳐주시곤 합니다. 주변의 지인들과 얘기해봐도 큰 맥락에서 별 차이는 없습니다. 심지어 굉장히 단순하게 연습할거 하나 던져준다거나, '이거 연구해와' 하고 끝나는 분들도 계신다더군요. 왜 1:1 레슨이 좋은지 결정적인 이유는, 선생님이 '나'에게 100% 집중해서 '나'에게 맞는 피드백과 조언을 준다는 점입니다. 대가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큰 틀과 원칙은 있을지언정 학생마다 처방전이 다 다른 분들이 많습니다. 교본 1,2,3, 끝내면 이제 고등학교 수준이 되었으니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고... 이런 일차원적인 진행이 아닙니다.


허버트 L. 클라크에게 사사한 클로드 고든의 말에 따르면, 중고등학생 때 자신은 이미 하루에 몇시간씩 연습하고, 나름 어느정도 수준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는데, 클라크에게 연락하고 찾아갔더니 처음엔 하루에 30분 정도면 끝나는 연습만 해오라고 해서 조금 실망스러웠다고 합니다. 심지어 클라크 본인의 교본에 약하게 불라고 써놓은 것들을 그냥 크게 불라고 해서 왜 그런가 했더니 "아직 어떻게 음을 컨트롤하는지 제대로 익히지도 못했는데 처음부터 약하게 불려고 하면 주법이 망가지기 쉽다. 기본적인 시스템이 튼튼히 잡히고 나면 그때 해야 한다"고 했다네요. 긴 설명은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만, 요는 아무리 좋다는 교본도 교본만 달랑 들고 하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지금의 내 상황과 내 수준에 맞는 연습인가?" 를 모른다는 거지요. 거꾸로 쉬어야 할 때는 어설픈 염려 때문에 불었다 말다 하지 말고 제대로 쉬어줘야 합니다.


선생님마다 스타일은 다를지언정, 예술 계통이 다른 분야와 다른 (무서운?) 점은, 그림은 보면 알고, 소리는 들으면 안다는 점입니다. 미사여구로 빙빙 돌려말할 것이 없지요. (사실 그래서 이렇게 글쓰는 것에 대해서도 가끔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만... ㅜㅠ) 트럼펫 선생님은 학교나 학원에서 생각하는 선생님과는 조금 다릅니다. 이끌어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사람이란 것은 맞습니다만, 가이드해주고, 짚어주고, 조언해주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배우는 사람이 능동적으로 몰두하고, 연구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늘 수가 없으니까요. 가만히 앉아서 몇마디 들었다고 "아~ 그렇구나" 하고 실력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해봐라" 했을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록 - 셀프 모니터링의 중요성

글을 마치기 전에 제대로 된 개인레슨을 받을 때와 안 받을 때의 차이점, 특히 그냥 취미로만 혼자 했을 때와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혼자 할 때는 "아 이게 아니구나" 하는 판단이 서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선생님이 듣고 "아니 너 지금 이렇게 하고 있잖아, (시범/비유) 그게 아니고, 이렇게 하라고" 라면서 차이를 들려주기 전에는 뭐가 다르고 뭐가 문제인지 스스로 잘 깨닫지 못합니다. '아니 뭐 이 정도면 됐지 뭘...?'이라고 보통은 생각하지요. 그런데 그것이 큰 차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팔을 불면서 처음엔 '소리에 100% 정답이 어딨어?'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입니다. 금관 악기를 부는 데에 있어서 '맞는 소리'는 분명히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순수히 음색의 문제는 아닙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맞는 소리'가 날 때에서야 톤의 일관성이라던지 유연성, 혀 사용의 자유로움 등이 전부 나올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좋은 호흡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주법 시스템이 구성을 갖출 때 나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트럼펫은 사람이 곧 악기다'라고 하죠.


우선은 이런 것들에 대한 자각 자체가 있어야 무슨 기준이 생기던가 할 수 있습니다. 연습하면서 튜너와 메트로놈... 특히 메트로놈을 꼭 챙기는 이유도 이런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기준과 자각이 생기면, 스스로 녹음을 해서 들어보면 스스로도 자신이 지금 어느 정도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정도는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연주를 하면서 자기 귀로 듣거나 느끼거나 하는 것과는 또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 소리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벨 뒤와 앞에서 들리는 소리 자체도 다르며, 불 때에 몸의 울림과 진동을 통해서 들리는 소리가 섞이기에 더욱 더 달라집니다), 불 때에는 실제 표현되는 소리보다 자기 머리 속의 음상에 더 취해 있거든요. 이것 자체는 딱히 나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만... 듣는 귀는 다 있다고, 녹음을 해서 들어보면 완전히 객관화가 됩니다. 어디까지 문제가 보이고 정확히 파악이 되는지는 개개인 수준별로 다르겠지요. 그리고 이런 디테일의 차이에서도 레슨을 받은 것과 안받은 것에서 차이가 날 확률이 큽니다 - 막연히 '좀 별론데?'가 아니라 '음정이 나갔네', '호흡이 떴네', '입술을 조였네', '아티큘레이션이 안되네' 라는 식으로.


번거롭기는 하지만, 독학이든 레슨생이든 틈틈이 이렇게 녹음을 해서 셀프 모니터링을 해보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연습은 자기 편한대로 하고싶은 것만 하면 늘지 않습니다. 본인의 연주에 현미경을 들이대서, 이번에 공략할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를 하고 포커스를 맞춘 다음에, 그 부분이 제대로 정리가 될 때까지 집중해서 물고 늘어지며 다져야 합니다. 그나마 그렇게 해야 작은 한 톨만한 부분이 좀 나아지는 정도이지만, 이것이 모이고 쌓여서 이윽고 전반적인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저는 믿습니다. "실력 〓 [방향 x 집중력] x 시간" 이랄까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시간만 많이 투자한다고 해서 절대로 좋아지지 않습니다.



생각을 정리한다고 쓰기 시작한건데 장황한 이야기가 되어 좀 부끄럽네요^^;

읽는 분들에게도 저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두 건투를 빕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