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시드니 콘 재즈 페스티벌에 다녀왔습니다. '콘'이라는 것은 콘서바토리움의 약자로, 제가 편의상 시드니 음대라고 하는 이곳의 본명이 '시드니 콘서바토리움 오브 뮤직' 이거든요. 이곳 사람들도 말을 줄이는 것을 꽤 좋아하는 편이라, 간편히 '시드니 콘'이라고도 많이 부릅니다. (본래는 독립기관이었다가 시드니대 산하로 편입되었으니 시드니 음대, 시드니대 음대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프로그램 일정은 일요일 단일 진행이고, 월드급의 유명한 거장이 참여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의 대형 재즈 페스티벌이 그런 면에서는 훨씬 크구나 싶어서 뭔가 아이러니 하기도 합니다만 (하하), 이곳은 뭔가 '이곳 답다'는 느낌이라 그것대로 좋더군요. 자기 분야에서 진지한 사람들이 와서 공연하고 교류하는 느낌?
사실 호주는 백인 / 영어 문화권인 것에 비해 미국 / 유럽 모두와 동떨어져 있고, 주류 정서의 결도 달라서 그런지, 재즈 쪽은 인프라도 대중성도 떨어지는 편입니다. 애호가 층은 분명히 있고, 의식 수준은 높다고 생각하는데... 뭔가 속세와 떠난 곳에서 자기들끼리 골몰히 몰두하고 수련하는 그런 느낌? (「드래곤볼」의 '정신과 시간의 방'이 떠오르네요.) 지리나 인구수 등의 기본적인 여건상, 평소엔 잊혀져 있다가 한번씩 뜬금포처럼 주목받는 사례가 나오는 것이 분야를 막론하고 이쪽 오세아니아 지역의 특성인 것 같습니다. 🙂

저는 당연히(?) 트럼펫 중심으로 계획해서 다녀왔는데, 티켓 구매를 미루다가 바로 전날 구입하려니 가장 비싼 골드 패스 (전 공연 입장권) 밖에 없더라구요. 딱히 그런 공지가 없길래 좀 이상하다 하면서도 어쩔 수 없지 하고 구입했는데, 당일 매표소로 가서 얘기를 해보니 본인들도 의아해하면서 흔쾌히 저녁 패스 (오후 4시~)로 바꿔주더군요. $100 아꼈습니다 휴!
테우스 노벨 (Teus Nobel)

네덜란드 출신의 트럼펫터입니다. 찾아보니 저랑 동갑이네요 (크흙 ㅜㅠ)
이 공연은 몇 안되는 하이라이트 공연이라길래 따로 단독 티켓을 구매해서 들어갔습니다. 사실 테우스 노벨보다는 피아노 주자인 제프 니브(Jef Neve)가 메인인 듯 하지만... 기본적으론 피아노+트럼펫 듀엣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단촐한 구성. 제프 니브가 벨기에의 거장이라더니, 과연 첫음 터치부터 훅 끌어들이더군요.
그런데 테우스 노벨의 연주에도 참 감탄했습니다. 유럽 특유의 우아하면서도 유려한 연주랄까요? 어떻게 저렇게 플레잉이 곱고 단정할까 싶어 넋놓고 듣게 되더군요. 도약이나 아티큘레이션 같은 것도 엄청 깔끔하고... 악기를 다루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이 날 가장 본받고 싶었습니다. 악기는 아마도 아담스의 플루겔혼을 썼던 것 같아요.
여담으로 같은 시각에 하는 루시 클리포드도 참 좋아보였는데 시간이 겹쳐서 못본게 좀 아쉽습니다. 이 쪽은 트럼펫은 없지만...
필 슬레이터 (Phil Slater) - 안드레아 켈러 콰르텟

안드레아 켈러는 호주를 대표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중 한명인데, 이 날 이 분과 팀을 꾸려서 하는 분들이 트럼펫의 필 슬레이터, 드럼의 사이먼 바커였습니다. 이 분들을 제가 기억하는게... 정말 보고 싶은데 못 본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거든요. 「땡큐, 마스터 킴」이라고 사이먼 바커가 한국의 김석출 명인의 소리에 매료돼서 그분을 찾고 배우는 모습을 담은 작품인데, 그 때 사이먼 바커와 함께 팀을 꾸렸던 트럼펫터가 이 필 슬레이터였습니다. 유튜브를 검색하면 모넷 공장에서 찍은 영상도 볼 수 있는데, 제가 이 날 봤던 모습과 가장 비슷한 건 비교적 근래에 촬영된 다음 영상이네요:
이 분은 뭐랄까... 다른 차원의 분이시구나 싶은 느낌입니다. 트럼펫에서 대금 비스무리한 소리가 나요. 참고로 이분 말고도 스콧 팅클러(Scott Tinkler)라고 제가 좋아하는 다른 호주 트럼펫터 분도 계신데... 그 분도 약간 이런 명상(?)과신데 지금 보니 필 슬레이터에 이어서 배일동 명창하고 공연하고 다니셨더군요 와...;
안드레아 켈러 쿼텟의 공연은 의식의 흐름이라고 해야 하나... 랜덤하다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의식 / 관념 중심의 음악이었습니다. 어떤 기분, 감정, 의식, 생각 등을 표현하는 느낌. 위의 공연도 비슷한 궤인 것 같은데, 어쩐지 안드레아 켈러는 뭔가 좀 더 귀엽고 올망졸망한 느낌이 들었네요.
필 슬레이터는 전부터 이곳 시드니 음대에서 시니어 렉쳐러로 가르치고 계신 분이고...언젠가 마주뵐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사용 악기는 모넷으로 추측됩니다.
라클란 맥켄지 (Lachlan McKenzie)

호주 브리즈번 출신의 떠오르는 신예 재즈 트럼펫터, 라클란 맥켄지 입니다.
호주의 젊은 아티스트는 어떤 수준일까 궁금하기도 했었고, 유튜브로 연주를 들어보니 참 괜찮길래 가서 보기로 했습니다.
노르웨이의 마티아스 아익(Mathias Eick)이 생각나는, 모던하고 여유로운 바이브가 묻어나면서도, 모나지 않은 정통 재즈스러운 방향성도 같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직 곡명도 정하지 않은 신곡을 마지막에 불어주었는데, 곡의 배경 얘기를 하는데 할아버지가 버마(미얀마)에서 무역상을 했었고, 본인은 가본적은 없지만 약혼자 분(이날 맨 앞에 앉아있었던)도 그쪽 분이라고 하더라구요. 그 약혼자 분을 생각하며 만든 곡이라고 하는데 딱 연주하는 순간 황금빛 햇살이 펼쳐진, 넘실거리는 푸른 논밭, 뒷편의 산과 언덕... 그런 풍광이 확 펼쳐지더군요.
이 공연은 어쩐 일인지 중고등 정도 되보이는 학생들이 꽤나 많이 와서 눈을 반짝이며 듣더군요.
즉흥연주의 스타일도 그렇고, 많은 부분이 굉장히 중도 혹은 교과서적인 느낌이었던지라 어떻게 익혔는지 궁금하여 공연 뒤에 잠깐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시간상 오래 이야기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고등학교 때까지는 즉흥 연주를 딱히 잘하지는 못했었고, 브리즈번의 JMI (Jazz Music Institute) 에 다니면서 많이 배웠다고 하더군요. 코드와 아르페지오 연습도 많이 하구요.
악기는 반 라아의 오이람 2 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반 라아에서 가장 대표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나팔인데, 실물을 본건 아마 이번이 처음인 것 같네요. 이 분 기골이 커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처럼 크거나 무거워보이지는 않았는데... 앞에서 들으니 반 라아 특유의 밀도감은 이 모델에도 여전하더군요. 생각해보니 나팔보다 마우스피스가 신기했는데 그건 못 물어보았네요 하하.
맷 조드렐 (Matt Jodrell)

호주 국내의 대표적인 재즈 트럼펫 스타가 아닐까 싶은, 맷 조드렐입니다. 예전에 제임스 모리슨의 인터뷰였나... 호주의 트럼펫터들을 알려달란 얘기에 언급된 이후로 어렴풋이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직접 보니 그 존재감이며 인기며 소리며... 아 이 사람은 대스타구나 하는 실감이 팍팍 나더군요. 국내의 제임스 모리슨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이름을 듣고 유튜브로 영상들을 좀 보았을 때에는 솔직히 '흠... 그 정도인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보니 알겠더군요. 소리의 존재감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이런 영상에서 보는 것보다 한 50배는 쩌렁쩌렁합니다.
나팔도 전통적인 스타일의 나팔을 사용하고, 소리 역시도 요즈음의 모던한 주자들과는 다르게 딱 정석적인 트럼펫 소리거든요. 그런데 나팔을 불어제끼는 파워 말고도 제가 보면서 참 감탄했던 것이... 이 분은 '확실히 한세대 전의 사람이구나' 라는 건 있지만, 이 분 나름대로의 '호주식 재즈' 에 대한 해석을 완전히 내놓으셨더라구요. 호주 특유의 거침 없으면서도 서글서글한, 또 동시에 어딘가 고독 혹은 황량한... 같이 연주하시는 분들과의 에너지나 합도 장난이 아니고, 분명히 재즈인데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왁자지껄한 호주식 선술집(펍)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듯한, 과장 좀 보태면 맥주 찌든 냄새가 풍겨질 정도로 선명하게 그려졌습니다. 엄청 놀랐어요.
감탄하고 놀라고 하면서 이곳저곳 잘 보고 다녔습니다만, 쌀쌀한 날씨에 멀리 나와있다 보니 몸이 피곤했는지, 사실은 오후부터 두통과 근육통(사무실 증후군... ㅠ)이 야금야금 도지기 시작해서, 사실 저녁 무렵에는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기가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집까지도 거의 1.5 ~ 2시간이 걸리는지라, 10시쯤 집에 와서는 진짜 아무것도 못하겠어서 그냥 다 포기하고 바로 누워버렸어요. 대신 일주일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서 회사를 잘 다녔습니다 데헷♡
공연을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역시 눈앞에서 실제로 체감하는 것이 다르긴 다르다는 것을 참 크게 느꼈습니다. 단순히 녹음 장비의 한계같은 것보다는 뭐랄까요, '나도 저렇게 해야지' 라는 목표가 구체화 되고, 매일같이 연습하면서 스스로의 현재 상황이나 한계를 느끼고 있을 때, 그 모든 것들이 뼈저리게 현실로 체감된다고나 할까요? 그냥 녹음된 음반이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으면 그냥 오... 그러려니 하잖아요. 그런데 눈앞에서 온몸으로, 현실로 체감하면서 와...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깔끔하게 불지? 어떻게 저런 즉흥연주를 하지? 어떻게 저런 톤 / 파워 / 고음을 내지? 등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저렇게 한시간 동안 안 흐트러지고 유지가 되지? 싶지요.
'아마추어는 한 번 될 때까지 하지만, 프로는 틀릴 수 없을 때까지 한다' 라는 식의 이야기가 요즘 연습할 때 종종 생각이 납니다. 시간이 부족한 요즘 시기를 기본기를 다지는 시간으로 삼아 조금씩 진전은 있습니다만, 여전히 갈 길은 멀군요. 🥲 ....화이팅!
그리고 어쩌다 보니 1주일 뒤에는 크리스 보티 콘서트가 또 있길래,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연주를 들을 수 있을지 두근두근하네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