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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펫 & 플루겔혼/나팔

AR Resonance (레조넌스) 트럼펫 시연, 감상평 (3월 14일 #3)

by J.5 2026. 3. 15.

-2편에 이어 

대망(?)의 마지막 편입니다. 

사실 다음 글을 언제 올릴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AR 레조넌스 나팔 시연기는 불고 나서 최대한 기억이 생생할 때 쓰는게 좋을 것 같아서... 넵, 이 글을 올리려다가 이날 하루 일정에 관한 글 3편을 몰아쓰게 되었습니다 -_-; 막상 이번 편 내용은 많지도 않은데...

시드니 밴드 악기점을 한번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계기가, 이곳이 시드니의 AR 레조넌스 공식 딜러였기 때문입니다 (대표 두분 중 한 분이 이태리 계이신듯?). 뮤트를 보러 간 김에 한번 불어봐도 되겠냐고 하니까, 가게를 지키던 점원분이 흔쾌히 악기들을 꺼내왔는데, 헉... 딜러는 딜러더군요. 무려 6대나 나왔습니다. 원래도 AR은 미감이 훌륭한 회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뚜껑을 열고 실물을 접해보니, 외관 만으로도 감탄이 나오더군요. 과연 이탈리아라고 해야 할지. 예술적인 디자인부터 마감의 질감, 단단한 존재감 등...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위 사진의 오른쪽부터 차례대로 수프리마, 나카리아코프, 로만티카, 소아베(Soave) 플루겔혼, 클래시카 C와 Bb 모델들입니다. 

수프리마(Suprema) 와 나카리아코프 (Nakariakov)
수프리마와 나카리아코프 (#2)
소아베 플루겔혼, 로만티카
클래시카 Bb, C

전편에 언급한대로 가게에 울림이 많은 편이어서 음색을 보는데에 어느정도 한계는 있었지만, 불어본 순서대로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 수프리마: AR 레조넌스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것이 이 모델 아닐까 싶더군요. 처음에 불었고, 가장 마음에 들어서 마지막에 한번 더 불어보았습니다. 기존의 장르나 공식 등을 떠나서, AR이 추구하는 나팔의  가장 순수한고 잘 제련된 형태라는 느낌.
  • 나카리아코프: 튜닝 슬라이드 부위의 묵직한(무식한?) 쇳덩이들이 인상적인 모델입니다. 둔하지 않으면서도 엄청나게 두텁 / 묵직 / 풍성한 소리가 납니다. 제 취향에는 중량이나 음색이나 너무 무겁긴 했습니다만, 어떻게 이런걸 만들었나 싶어서 놀랍더군요.
  • 로만티카: 들어서 입 앞에 대고 보니, 이 녀석은 딱 봐도 벨이 일반 사이즈에 가깝더군요. 그만큼 음장 폭이 모여있고 직진적이며 (일반적인 나팔과 비슷한 정도), 이 로만티카 모델은 빈티지 나팔들의 느낌을 추구했다고 하는데, 과연 AR 특유의 느낌을 간직하면서도 올즈 레코딩이나 그 무렵(50~60년대 전후) 나팔들의 쫀득쫀득한 느낌이 진하게 묻어납니다. 밀도가 높은?
  • 클래시카 (Bb/C 동일): 클래식 음악에 어울리는 곱고 부드럽고 맑은 느낌이 한가득이긴 한데, 심포니 / 오케스트라에서의 합주를 생각하면 기존에 주류를 이루는 바하 등과 소리의 블렌딩이 잘 이루어지려나? 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가게의 울림도 있고 해서 정확한 판단은 어렵습니다만, 아마도 좀 다르지 않을까 싶더군요. 좀 더 두텁고 부드러운? 몽실몽실한?
  • 소아베 플루겔혼: 현지 발음은 '스와베이'에 가까운... 본체에 이름이 적혀있는지는 보지 못했는데 아마 이 모델이 맞을 듯 합니다. 영상으로만 접했던 캔스툴의 1525 플루겔혼이 생각나는 방향인데 좀더 두텁고 좀더 벌어진 듯한 느낌? 다행히(?) 제 취향은 아니구나 싶었는데... 플루겔 피스를 들고 가지 않았어서 AR 플루겔 피스로 불었기 때문에, 벌어지고 호흡이 많이 빠지는 느낌이 더 도드라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플루겔혼 피스 좀 빌릴 수 있겠냐니까 공방 /창고 쪽에서 AR 마우스피스 풀 세트를 들고 나오더군요 ㄷㄷㄷ... 원근감 때문에 그렇지, 선반 위에 올려진 녀석들도 다 같은 가방에서 나왔습니다. 결국은 그냥 보이는대로 한 가지 피스만 조합해서 썼는데... ㅋㅋ

모델간의 차이는 위에 언급한 대로이고, 제가 느끼는 AR레조넌스의 보편적인 특성들은... 아마 불어보신 분들이라면 '좋긴 좋네...'라고 할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 소리: 음색적인 특징은 두터우면서도 벌어져있고, 허스키한 날것의 질감이 살아있고 음장이 굉장히 크다(넓다)는 점입니다. '두텁다'는 얘기를 굉장히 자주 사용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두터움이란 자칫 답답할 수 있는 밀도감의 얘기라기 보다는, 소리가 푹신푹신한 솜베개나 쿠션으로 둘러져 있는 듯한 느낌이 납니다. 허스키하고 벌어진 느낌이 답답해지기 쉬운 부분을 상쇄하는 부분도 있는데, 그동안 영상 등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그 '벌어졌다'고 느끼는 지점에서 소리가 상대적으로 얇은 부분도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나팔을 맞춘다고 생각하면 벨 모양이나 재질, 두께로 조절이 가능한 부분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오히려 커스터마이징 옵션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조금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이켜보면 다른 모델들보다도 수프리마에서 조금 더 두드러지는 특성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 무게: 일반적인 나팔에 비해 어느정도 무게가 더해진 느낌이지만, 무게 배분을 정말 잘 해놨습니다. 벨보다는 바디 쪽에 무게가 실려 있고, 특히나 리시버에 무게(카운터웨이트)를 줌으로서 막상 손에 들면 실제 무게에 비해 훨씬 가볍고 수월하게 들리는 느낌입니다.
  • 연주력: 이 부분이 연주자들에게는 체감적으로 제일 크게 다가올 것 같은데, 반응이라고 해야 할런지... 음들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이어져있는 느낌이 납니다.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넘어갈때 느낌이... 이게 뭔가 느낌이 쫀득하기도 하고... 약간 꿀떡? 젤리같다고 해야할까요? AR이나 로터스 나팔 쓰는 분들이 가장 열광하는 지점 아닌가 싶은데, 컨트롤도 확실히 쉽고 정확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시연하다가 기존에 올리던 식으로 도약을 하면 노리던 음보다 오버슛해서 위로 걸리는 일도 곧잘 일어나는데, 일반 나팔들에 비해서 음역에 따른 저항감이나 음정, 음색 등에 큰 차이가 없이 균일하게 느껴지다 보니, 이 쪽이 맞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그냥 한결같이 음 중앙을 뚫고 있는 느낌이랄까... '어떤 음을 불든 상관없이 똑같아!' 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이 얘기였구나 싶더라구요. 
  • 이 연주력에 관한 부분들을 가만히 보면, 나팔의 어느 부분에 무게를 더해서 진동을 잡아줄지와 더불어, 모우(MAW) 밸브를 정말 완벽하게 맞추고 살려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이 모우 밸브가 소개되었을 때에 일반적인 디자인의 나팔과 조합된 것을 불어보았었는데, 유기적인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바람도 많이 빠지고, 뭔가 좀 허하다? 헐겁다?는 느낌 같은게 있었거든요. 이건 다르더군요. 그런 부정적인 부분들이 전혀 안느껴진, 탄탄하게 잘 짜여진 제품의 느낌이었습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수프레마 (Suprema)

결론적으로는, 확실히 일반적인 나팔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악기입니다. 실성능부터 미관까지 치밀하게 들어찬 열정 같은 것이 느껴지고... 속으로 '천만원 넘어갈만 하네', '이러니 아담 라파가 눈이 돌아갈만 했구나' 싶더라구요. 소비자로서도 취향이 맞으면 이태리로 날아가서 직접 얘기하며 맞춰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여러모로 개성이 강한 것도 맞기 때문에, 예전에 샤걸의 레이븐이나 킬러 퀸을 보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이게 좋기는 한데... 나팔 자체의 매니아들은 열광할만한 악기이고, 다음 세대로 넘어갔다고 해도 좋을 것 같은 수준이지만, 그만큼 약간은 다른 악기 느낌이라 어디에 잘 쓰일 수 있을지, 기존의 악기들에 비해 더욱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악기들일지는 증명이 필요할 듯 합니다. 또한 고가인 만큼, 나의 취향에도 그만큼 부합하는지 역시 좀더 엄밀히 생각하게 되기도 하구요.

요즘 나팔을 바꾸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는게 참 다행인 것 같습니다 하하. 어차피 가격대가 엄두를 못낼 범위다 보니 그러는지. 돈이 많고 한가지 나팔을 새로 고를 수 있다면 탑티어 분류로 들어갈, 매혹적인 나팔임엔 틀림 없습니다. 안토니오 사장님께 찬사와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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