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고 다니는 차가 정기점검을 받을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온 뒤에는 회사 근처 정비소를 갔었는데, 이번엔 어쩐 일인지 점검비를 너무 높게 부르길래 그 전에 다니던 한인 정비소에 연락을 드리고 다녀왔습니다. 얼마전에 이슈가 된 시인 어부와 닮은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곳인데, 저렴하게 잘 해주시거든요. 이제는 편도로 거의 한시간 거리네요 😂
그 전에 다닐땐 정비에 으례 한 20~30분이나 걸리겠거니 하고 가서 구경했는데, 이젠 거리가 꽤 멀기도 하거니와, 미리 넉넉히 예약하고 차를 맡겨두고 나오는 호주 정비소를 몇번 다녀서 그런지, 이번에는 가서 기다리는 동안 입술이나 풀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미리 들더군요. 가보니 앞에 손님이 아직 계시길래 차에서 나팔을 꺼내려는 찰나에 사장님이 뭔가 확인할 게 있으셨는지 오셔서 차 조수석 문을 여시는데,
"어...! 이거 뭐에요. 트럼펫 아니에요?"
하시고는 쭈그러 앉아서 나팔가방 안을 보시는데, 왜 그 있잖아요. 그 표정이랑 눈이 갑자기 소년처럼 반짝반짝✨하시는 거에요. 아... 뭔가 짚이는 데가 있어서,
"네 네 트럼펫이에요. 사장님... 혹시...?"
"아유 나 이거 예~엣날에 불었어요! 벌써 몇십년은 됐겠네 하하하. 함 봐도 돼요?"
하십니다. 얘기를 들어봤더니 고등학생 시절에 뺀드부에서 부시고 그 뒤로는 손을 놓으셨다고 합니다. 사모님도 보시더니 "어머 이거 우리 남편이 옛날에 불었댔어요! 이게 뭐지? 색소폰?" 그러니까 사장님이 화장실로 걸어올라가시면서 "아니야, 트럼펫!" 하십니다.
왜 사람이 옛날 동창들을 만나면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하잖아요. 하버드에서도 환경을 몇십 년 전처럼 꾸민 곳에서 지내게 했더니 어르신들이 회춘했다는 얘기도 있었죠. 사장님이 순간 소년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게 어찌 그리 기분좋은 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침 그 날이 사장님 생일이시라고 하셔서, 입술을 간단히 풀다가 생일 축하곡을 살짝 변주해서 연주해 드렸습니다. 사모님이 더 좋아하시네요 😁
사장님은 이제 나이도 어느정도 드셨고 하니, 안그래도 취미로 다시 해볼까 하는 생각이 조금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아유~ 이제 뭐 소리나 날라는지도 모르겠어요 하하" 하시면서도 은근히 계속 흥미를 보이시길래 (물론 옆에서 계속 제가 바람잡이도 했습니다만 ㅋㅋ) 정비를 마치시고 마우스피스라도 한번 불어봐도 되냐시길래, 미리 준비해둔 피켓의 옌스 스페셜 피스를 드려보았습니다. 립버징이랑 마우스피스 버징 바로 소리 다 나시더군요. 흐흐.
그래서 악기를 불어보시라고 건네드렸는데, 두근두근 하시면서 잠깐의 머뭇거림 후 악기를 입에 대시는데.
"바앙-"
아주 듣기 좋은, 열려있으면서도 꽉 차고 둥글둥글한 1옥 솔 음이 납니다. '와 소리 정말 좋으시다...'라고 내심 감탄하고 있는데, 재미있는건 그 다음에 스케일을 한번 해보시는데 바로 소리가 모기소리처럼 쪼그라들더군요. 처음엔 아무 생각없이 그냥 훅 부신 거고, 그 다음엔 긴장하면서 부신거죠. 이런게 참... 트럼펫의 묘미(?)인 듯 합니다 😂
소리의 질이야 둘째 치더라도 역시 어린 시절에 몸에 다져진 습관이 있어서인지, 소리가 잘 나는 것을 보니 "야 이거 아직 소리 나네!" 하면서 사장님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하나 사서 다시 해볼까 고민된다고 하시더군요. 열심히 북돋아드리고, 몇달 뒤에 있을 다음 점검 때에도 다시 나팔을 들고 오기로 하였습니다.
요새는 삶이 참 차분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이상은 특별할 일 없이 고만고만한 일상 속에 뭔지 모를 안정감, 편안함을 느낀다고 할까요. 그런 와중에 이렇게, 내가 갖고 있는 것으로 남한테 기쁨을 줄 수 있구나 하는 것이, 생활 속에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소소한 꺼리들 중 하나이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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