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은 그저 화면 저편, 지면 너머에 지나가는 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하나 둘 들어 40에 접어드니, 이제는 그 떠나는 이들이 나와 맞닿아 있는 분들이 되고, 다른 한 켠으로는 스스로가 '시대의 최일선'에 서 있는 세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러러 보는 윗 세대의 어른들, 선생님들이 세상에서 떠나간다는 느낌이 참... 말로 형언하기 어렵지만, 헛헛함과 쓸쓸함, 착찹함이 섞여있다고나 할까요.
이제 나는 이번 삶의 무대에서 비틀거리며 내려와, 아주 단순한 고요함을 경험한다.
홀로 고독하나, 동시에 강하게 이어져 있음을 느낀다.
- 훕 반 라, 1964.05.22 ~ 2022.12.24
작년 말에 훕 반 라 사장님의 부고를 듣고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아직 60세도 채 되지 않았는데... 무엇이 그리 급하셨는지. 사인이 궁금하지만 아직도 별다른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은 듯 합니다. 코로나 때에도 아프셨다고 했었고, 말씀을 남긴 것을 보면 아마 병을 앓지 않으셨을지... 언젠가 공방에 방문하게 되면, 조용히 물어볼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지금은 훕 사장님 밑에서 나팔을 만들던 Yannic 이라는 분이 이어서 나팔들을 만든다고 하네요.)
굉장히 완고하면서 자기 철학도 뚜렷한 분이셨습니다. 나팔의 디자인이나 웹사이트 등에서도 특유의 결이 묻어나오지요. 오이람 라이트 II 모델을 처음 구입한 뒤에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니, '다른 모델들을 두어개 더 보내줄테니 그 중에서 직접 골라 보라'고 할 정도로 진지하게 생각해 주셨습니다. (비록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보통 연주자가 화가라면, 악기는 붓이라고 생각하는데, 훕 사장님은 본인을 화가로 칭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하시더군요. 커스텀 작업을 왜 어지간하면 기피하는지 알겠더라는...😂 살면서 언젠가 한번은 만나뵐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GR 그 자체인 개리 랏트케 사장님. 돌아가시지는 않았습니다만, 올해 안으로 사업을 정리하고 은퇴할 생각이라고 하시더군요. 회사를 매각하게 되면 GR 브랜드나 기존의 모델들 자체는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도 있지만, 마우스피스 메이커들 중 저와 가장 인연이 깊은(?) 곳이다 보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합니다. 참고로 지금까지 일하신 27년 동안 휴가는 딱 1주일 밖에 쓴 적이 없다고 하시네요.
밸브 오일 쪽에서 개인적으로는 바하 급의 위상 아닌가... 하는 헤트만 社 역시, 가업으로 이어오던 회사를 건강 상의 문제로 문을 닫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새 한동안 더 이상 공급이 없는 듯 해서 코로나 때문인가 했더니, 다른 사정이었더군요.
현재는 유럽 내의 배급을 맡고 있던 J.Meinlschmidt (마이늘슈미트?) 라는 곳에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은데... 뭔가 좀 알쏭달쏭합니다. 똑같은 제품들은 아니라는 말도 있고... 넘버링 컨셉은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 같네요. 헷트만 사 내지는 오일 제조법을 매입했다는 썰도 있고,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자기들이 직접 새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곳에서 자주 가던 가게에서 취급하는 것 같은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 써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담이지만 5Starr 오일에도 호기심이 동한데, 이건 아직 미국 밖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것 같네요.)
2021년 칼리키오의 존 두다 어르신을 보낸 이후, 22년에는 훕 반 라, 23년에는 GR... 저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큰 임팩트를 남겼던 세 곳인데, 한 해에 하나씩 떠나가고 이제는 없네요. 나의 나팔 인생도 같이 사그러져 가는 중인가... 하고 센티멘탈한 감상이 들기도 하지만, 아마 전과 같지는 않더라도 저는 저대로 새 페이지로 나아가고, 또 새로운 물건들, 새로운 회사들과 인연이 생기겠거니 하고 있습니다. (사실 마우스피스는 요즘 로터스가 관심이 많이 가기도 하구요 😁)
덕분에 즐거웠고, 고마웠습니다.
2010년대를... 30대를 함께한 브랜드들을 추억하며 기리는 마음으로, 오늘의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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