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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들

마우스피스와 나팔. 2019 4월.

by J.5 2019. 4. 9.

벚꽃이 조금씩 피어나는 요즘입니다.

 

롤(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을 가끔 하고 방송도 보는데, 돌고 돌아 옛 라이벌 둘이서 다시 결승에서 붙게 되네요. 사람들이 태진아 vs 송대관 같다고 재미있어하는데...

 

마우스피스 얘기로 돌아가자면, 저는 막 밥 리브스 42M을 . 이게 3번째 혹은 4번째인데... 신기하게도 이 피스는 제가 팔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행방불명되거나 한 적이 많아요. 저도 돌고 돌아 42M로 다시 돌아오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2019.04.09: 신형 케이스네요. 옛날에는 멍멍이 사진이 있는, 굉장히 조촐한 케이스였는데...^^

GR 피스들이 꽉 차는 배음이 좋기는 한데 림의 느낌이 잘 불릴때와 안 불릴때의 편차치가 너무 심해서, 그냥 불기 편했던 기억이 있는 밥 리브스로 당분간 돌아갈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음색 면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여러모로 좀 더 자연스럽다고 할까요? 원래는 선생님이 주셨던 밥 리브스의 퍼비앙스 (RP) 시리즈를 오래 썼었는데, 돌이켜보니 울림이나 배음 면에서 약간 불만이 있었던 것 같아서... 모르겠네요. 일단 또 해보고, 계속 가 봐야지요.

 

유튜브 동영상에 마우스피스 관련해서 댓글을 달았는데, 제 생각을 한번쯤 정리하자면 미국산 마우스피스들 중에서는 밥 리브스, GR, 모넷 피스가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취향으로 뽑은 것이기는 하지만...^^ 이 외에도 참 많은 좋은 회사들이 있기는 한데, 밑도 끝도 없어지니 가장 비싼 이 세 브랜드에 대해서만 이야기할게요. 일단 가격대도 셋이 거의 도찐개찐이고... (보통 모넷이 가장 비싸다고 여겨지지만, 같은 금도금이면 셋이 비슷비슷합니다.)
※ 2019.05.05 추가: '가장 좋다'는 건 아무래도 주관적인 개념이라 '가장 고급인' 정도로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실제로 요즘 장비에 대한 관념 자체가 조금 바뀌고 있는지라... ^^

 

 

모넷: 일단 모델 네이밍이 참... -_-; 모넷 마우스피스는 직접 웹사이트 등에서 확인해보지 않으면 모델명만 보고 얼추 이 피스가 어떤 피스인지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개성이 유별난 브랜드 답게 마우스피스도 모넷 특유의 펑퍼짐하면서 두텁고 허스키한 톤이 있고, 불리는 측면에서도 확실히 나팔을 위아래로 꺾는다던가 하는 영향이 적어집니다. 그냥 호흡으로 불어야 되는 경향이 강한데, 이런 경향이 극대화된 것이 프라나 시리즈입니다. (최신 레조넌스 시리즈는 안불어봐서 모르겠네요)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스탠다드 시리즈가 무난한 것 같구요. 호흡은 셋 중 가장 쭉 빠져주는 경향이고, 실력차에 따라서도 그렇게까지 까탈스럽진 않습니다. 기존의 제품들에 비해서 워낙 '다를' 뿐이죠. 저는 칼리키오 나팔에 모넷 피스들이 여러모로 맞지가 않아서 요즘 쳐다볼 일은 없습니다만 하하. 블랭크가 다양한데, 개인적으로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모던 / 라이트 형태가 좋더군요.

 

GR: 항상 이야기하지만, 꽉찬 배음과 더불어 컴퓨터, 혹은 칼같은 반응이 일품입니다. 반응이 워낙 예민하기 때문에 잘 불리는 날이면 주력소모도 굉장히 적고 오래 불 수 있는 피스구요. 모넷은 애초에 다른 악기니까(...) 논외로 하자면, 기술적 / 공학적으로 가장 '최첨단'스러운 마우스피스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GR은 '(연주자가) 맞게 부냐 아니냐'에 따라서 편차치가 유난히 두드러지는 피스입니다. 원래부터 저랑 좀 안맞을 수도 있고, 잘못 불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안불리는 날은 정말 나팔을 어떻게 부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곤혹스러웠습니다. (사실 이건 요즘 제 문제이긴 합니다만... ㅜㅠ 주법 변경 때문인지 GR 피스 때문인지 알쏭달쏭하군요.) 아직도 64~65 사이즈 모델들에는 관심이 있습니다. 되는 날에는 이런 피스가 또 없어요.

 

밥 리브스: 세 브랜드 중에서 가장 전통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밥 리브스는 '자연스럽다'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피스같습니다. 림이 세상 편해서, 유명한 아티스트 모델 피스들도 림은 밥 리브스 림을 카피해달라고 했다는 썰이 있습니다. 반면 너무 편하다 보니 마음껏 눌러불게 될수도 있다는 말도 있더군요. 톤이나 반응 측면에서도 유난스럽지 않고,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음 전환이 기분 좋습니다. 나긋한, 혹은 보송보송한 느낌이 어느정도 항상 있는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무게, 두께 측면에서도 가장 가벼운 (전통적인) 편이다보니 대할 때에도 마음 편하고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정통 마우스피스 스타일에 대한 자기 나름의 해석을 극한까지 이뤄낸 브랜드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참고로 GR에 부탁해서 밥 리브스 림에 맞게 언더파트를 제작했다는 분이 계시던데, 저도 한번 해보고 싶어지더군요.

 

아... 지금 봐도 너무 멋지게 잘생겼네요 ㅜㅠ 우리 칼리키오 R2/7... (자뻑)

다사다난했던 칼리키오 #7550 나팔은 곧 팔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지고 있는 칼리키오 나팔들이 다 너무 아까워요. 돈이 많았다면 더 다양한 배리에이션을 소장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요 몇달동안 수난(?)을 겪으면서, 아... 그냥 장비는 맞는거 하나만 있으면 그 외에는 다 필요 없는거구나, 하는 깨달음 같은게 오더라구요. 서울 선생님이 툭툭 던지시는 핀잔 같은게 있는데, 그 중 하나였습니다. "야, 넌 뭔 나팔을 두개씩이나 갖고 있냐?" 하하...^^

 

나팔에 대한 감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몇 년간은 내가 원하는 나팔이 무언가를 찾는 여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좁히고 좁혀서, 테스트는 해볼만큼 한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나팔을 R2/7 컴비네이션으로 받고 난 후, 어느 정도 분명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원했던건 R2 벨이 아니라 그냥 일반 2번 벨이었구나' 하구요. 사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각기 다른 브랜드 부품들을 조합해보는 단계까지 나아갈텐데... 아직은 모르겠네요. 원하는 소리와 표현을 하는 데에 있어서, 나팔을 잘 부는게 목적이지 궁극의 나팔을 찾는 게 목적은 아니니까요.

 

1S/2 나팔과 이 R2/7 나팔 둘이서 상태가 좀 다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일 한번 크게 벌리고 마무리 짓자는 느낌으로, R2/7 을 팔고 1S/2 를 개량해서 받은 뒤에 장비에 대한 것들은 - 마우스피스도 그렇지만 - 고민을 마치고 답을 내고자 합니다. 다행히 존 두다 어르신이 요즘 다시 캔사스 공방에 손이 닿으셔서 벨도 만들 수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요즘 뭐하시는지 엄청나게 바쁘셔서 연락이 잘 안되기는 하는데...ㅜㅠ 아마 주말만 캔사스에 계시나 싶기도 하고.

 

참고로 2번 벨을 기어이 구할 수 없으면 그냥 칼리키오 나팔들은 정리하거나, 쉴케 S32HD 아니면 야마하 9 시리즈 중 하나로 마무리 지으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뭔가, '장비에 대한 것들을 일단락 짓는' 데에 방점을 찍는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악기론(論)

장비와 관련해서 요즘 들어 와닿는 문구가 있다면 이런 것입니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소리가 나는 악기는 쉽게 불린다. 자기 머릿속에 있는 소리를 내기 위해 억지로 소리를 만들어서 끼워맞춰야 하면 불기가 어려워진다."

 

"편하게, 쉽게 불리는 걸 골라라" 라고 하죠? 

 

주자가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과 악기 자체가 가진 성향 사이의 간극, 혹은 비율 차이는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서울 선생님 같은 경우는 '악기 간에 소리 차이가 어딨냐, 다 자기가 내는거지. 산도발이, 혹은 누가 누가, 악기 바꾼다고 소리가 바뀌디?' 라고 하시는데, 말 그대로의 뜻은 전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의도는 100% 공감하지요. 음악적으로 듣는 귀와 오디오파일로서의 귀가 다르다는 것이 처음에 참 크게 와닿았습니다.

 

연주자와 수집가 (혹은 취미가, 오디오애호가 등)의 '마인드셋'에도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쳇 베이커도 그랬지요. 마약 사려고 악기 막 가져다 팔아버리고 그날 그날 손에 쥘 수 있는 악기 가지고 불고... 연주자는 물론 '아, 이 악기 좋네' 할 수 있는 변별력이 있지만, 그냥 그 정도 뿐인것 같습니다. 그 이상 악기 자체에 관해서 끄달리지 않습니다. 쓰다가 안되겠으면 갖다 처분하고, 그때 그때 구할 수 있는 악기 중에 괜찮은 걸로 고르고 끝, 정도랄까요.

 

악기는 항상 어느 정도의 '틀' 인 것 같습니다. 그런 쪽으로 제가 예민한 건지, 혹은 고집이 센 건지는 모르겠지만, 예를 들면 R2/7 같은 경우는 실제 무게도 조금 더 무겁고 (바하 스탠다드 정도?), 예상했던 것보다 소리가 어둡다거나 해서, 불다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더 든다던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다 나쁘다의 얘기가 아닙니다 (제발!). 일정 수준 이상의 악기라면, 특히 나팔은, 순수 취향의 문제이니까요. 바하 1.5C 등의 큰 피스를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것도, 저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클래식 음악계에서 '전반적으로' 찾고 선호하는 소리가 큰 피스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혹은 클래식 악곡들과 좀 더 잘 어울린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교향악단 오디션에서 같은 실력의 연주자가 같은 곡을 같은 느낌/표현으로 불었을 때, 작은 피스로 불었던 사람보다는 큰 피스로 불었던 사람 쪽이 아무래도 더 선호되지 않겠냐, 하는거죠. 물론, 자기와 맞지 않거나 감당할 수 없는 피스로 똑같은 퍼포먼스를 구사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만...!

 

마음에 드는 악기를 찾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평생 악기 하나만 가지고 부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산도발 옹을 예로 들자면 이 분도 악기는 꽤 자주 바꿨지만 마우스피스는 마운트버논 바하 3C 하나만 가지고 붑니다.) 어느 정도는 본인이 순응해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무엇이 주(主)고 무엇이 부(附)인지는 본인이 구분을 분명히 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사는 나라의 사회나 시스템이 마음에 안드니까 직접 이상적으로 바꾸려 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일단 나에게 주어진 (내가 속한) 사회 안에서 -일단 그것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살 것이냐, 같은 문제와도 상통하는 것 아닐까 싶네요.

 

소리나 부는 느낌, 호흡에 대한 반응 등... 악기를 평가할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어느 정도 그 '틀'이 자기가 생각하는 프레임에 맞아 떨어진다면, 어떻게 (거기에 맞춰서) 더 잘 불지 고민하고 익히는 것이 연주자 개인으로서는 더 발전적인 방향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이제 어느 나라에서, 혹은 어떤 동네에서 살지 정도는 얼추 정해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장비 바꿈이 아주 없을거라는 말은 아닙니다만, 안정을 좀 찾고 잘 정착해보고 싶네요.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끝이 없으니, 여행에 이제 관심을 좀 줄여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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