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미학. 색소폰과 트럼펫의 비교
어느 커뮤니티에서 '교보문고에서 개최한 손글씨 대회 결과'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저는 꽤 악필인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글씨들이 참 예쁩니다.
조금 더 알아보니, 이것은 작년 대회(9회)의 결과더군요. 같은 글이 돌고 도는 한국 커뮤니티 특성상 이제서야 보게 된 것 같습니다 하하. 올해 대회(보러 가기)는 한류 열풍의 여파 덕인지, 30여명의 수상자들 중에 외국 분들이 4분이나 계시는 것이 신기하네요.
예전에는 위 마지막에 실린 유선옥 님의 글씨처럼 유려한 글씨체를 '예쁜 필기체'로 쳐주는 느낌이었다면, 현대로 오면서는 다른 수상작들에서 보이듯 직선이나 툭 툭 친 것 같은, 간소한 느낌으로 이루어진 글씨체가 돋보이는 느낌이죠.
수상작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역시 한국 사람은 색소폰보다는 트럼펫을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발칙한 생각이 듭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였던가... 어딘가에서 한중일 3국의 미학에 관한 글을 상당히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중국은 화려함, 일본은 인공미, 한국은 '무심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더군요.
제가 주변 분들에게 트럼펫과 색소폰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하는 비유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트럼펫은 유화, 색소폰(목관)은 수채화'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트럼펫은 직선, 색소폰은 곡선'이라는 것입니다.
소리의 흔들림이나 여음, 음색같은 부분을 보면, 목관은 좀 더 도화지에 색을 자연스럽게 번지게 하는 수채화 같은 느낌이라면, 트럼펫은 유화처럼 그 색을 일일이 칠해주어야 하는 느낌이랄까요. (비록 저의 미술에 대한 지식은 그리 깊지 않습니다만...^^) 그리고 후자의 경우, 색소폰은 태생적으로 소리가 낭창낭창하게 휘어지고 야들야들하게 흔들리는 반면, 트럼펫은 곡선을 그리려면 직선을 하나씩 하나씩 그어서 잇는다는 느낌이지요.
생각해보면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의 디자인 코드도 이와 비슷한데, 저는 옛날부터 람보르기니라던지, 란치아의 「델타 인테그랄레」같은 직선적인 디자인을 참 좋아했거든요.
제가 감탄하면서 한참을 가만히 보았던 안중근 의사의 붓글씨는 또 어떠한가요. 묵직한 힘이 느껴지면서도 하늘을 뚫을 듯한 거침없는 기세와, 그 속의 단호함! 제가 살면서 본 가장 멋있는 필체인 듯 합니다.
제가 트럼펫을 좋아한 데에는 이런 미적 코드가 트럼펫이 가진 성질과 맞아떨어지는 것도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기에 쳇 베이커와 토마쉬 스탄코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이 분들의 소리가 '무심함'에 닿아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 ^^
우리에게 친숙한 한국어에도 이런 느낌이 있는데, 한국어는 1글자 1음절로 발음이 딱딱 끊어지거든요. 개인적으로 한국이 재즈에서 이야기하는 '스윙' 감각이 전반적으로 약하다는 인상을 받는데, 이런 발음, 음절구조와 상당히 큰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윙-Swing' 이란 발음만 해 봐도 알 수 있지요.) 발음에 관한 이야기는 예전 멜빈 존스 교수님에 관한 글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이런 부분들을 굳이 약점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특징으로 보고, 한국어만이 가지고 있는 맛과 매력을 잘 찾아서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쩐지 토마스 간쉬의 싱글텅잉 연습이 생각기도 하는데...^^
트럼펫과 색소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