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40대가 된 나팔 취미가(家) 이야기 #1
2009년 10월 25일, 바하 TR-600.
석사 졸업작품의 자료로 필요하게 되어, '이 참에 한 번 질러 보자!' 하고 산 첫 트럼펫입니다.
15년이라고 하니, 생각보다 또 얼마 안된것 같네요.
이듬해 5월에 첫 녹음을 올리고, 지금까지 블로그에 쓴 글은 340여개 정도 되는 듯 하군요.
음...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풀어가야 할지, 조금은 망설여집니다.
...아마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구입했던 음반 아닐까 합니다.
다른 좋은 곡들도 많았지만, 이 음반에서 처음 접했던 쳇 베이커의 '마이 퍼니 발렌타인 (My Funny Valentine)'과 '룩 포 더 실버 라이닝 (Look for the Silver Lining)'에는 마력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 따로 쳇 베이커의 'The Best of Chet Baker Sings' 앨범을 구해서 정말 많이 들었었지요.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지금도 연락하는 은사님께 받았던가... 어디서 온건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ECM의 컴필레이션 앨범이 한장 있었습니다. (썼던 글을 뒤져보니, 그 은사님께 빌렸었나 보군요)
거기에서 첫 문을 여는 곡이 토마쉬 스탕코의 'Svantetic' 이었습니다. 음악으로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그 느낌이 너무나 강렬하고 압도적이어서, 거실의 비싼 오디오로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아버님께서 무슨 장송곡 같다며 불길하다고 끄라고 하셨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였고, 국민(초등)학교때부터 아버님의 발령을 따라 호주에서 자라다 임기를 마치고 고등학생이 되어 다같이 돌아온, 소위 귀국자녀였습니다.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낙원상가 (아마도?) 쪽의 한 가게로 같이 가서 생전 처음 접해보는 고급 오디오를 구입하셨는데, 나중에 말씀하시길 한국 적응에 힘들어할까 염려스런 마음에, 정붙이기 쉬우라고 구입한 거라 하시더군요. 아버지... 어쩐지 저한테 계속 의견을 물어보시더라니... (하지만 아들은 이걸 계기로 그만 오디오에 눈을 떠버리고 말았다는 흉흉한 결말이;;)
사람들이 이르길, 누군가의 머리 속 트럼펫의 소리는 처음 접하는 소리가 강렬하게 각인된다고 하거든요.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음색을 설명할때 쳇 베이커와 토마쉬 스탄코의 예를 항상 들었는데, 지금 보니 정말 그 말이 맞네요.
하지만 한국에서의 교육방식을 납득할 수 없었던 저는, 결국 혼자서 다시 호주로 돌아오게 됩니다. 고 2때는 하숙집에서 지내다가, 고3 때에는 뒷바라지를 하신다고 어머님께서 오셨는데, 아마 그 시기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쳇 베이커의 음악과 소리에 매료되어 있었던 저는 당시 초창기였던 인터넷에서 트럼펫에 관한 정보를 검색해 보고, 이것이 무지하게 어려운 악기라는 것과, 최소한 하루에 x시간 이상 매일 연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글을 보고, '그럼 나랑은 인연이 없겠구나'라며, 용암처럼 지면 아래에 천천히 쌓이다가 불현듯 튀어나온 호기심을 짐짓 단정지어 버립니다. 무언가를 그렇게 꾸준하게 하는 것이 저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었고, 또 만화와 음악, 농구와 공부, 모두 나름껏 잘하고 또 즐기고 있었거든요.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요즘 말하는 '메타인지'가 참 부족한가 봅니다.)
혼자 호주로 돌아오는 것은 그 당시에도 큰 일이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기에, 저도 나름대로 부모님(과 누님)께 향후 계획에 관해 얘기를 드렸습니다. "지금 목표로 하고 싶은 것이 음악, 농구선수, 애니메이션 이 세 가지 정도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마 운동선수를 하기에는 타고난 재능이 미치지 못한다 보셨을 것이고, 음악 역시도 너무 험난한 길인데다가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그리고 간간히 피아노 레슨을 받았을 때 영 심드렁했던 모습에 자신이 없으셨을 테지요. 애니메이션은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당시 일본의 '에반게리온'과 미국의 '라이온킹'의 엄청난 흥행과 실적에 힘입어 미래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한창 주가가 높아지던 시기였거든요. (신문에서 현대 차 몇대의 수출과 맞먹느니 어쩌니 했던 기사를 본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가족들은 만장일치로 애니메이션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럼 호주로 돌아가서 최고의 시각디자인 과에 들어가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계획을 세워 발표했지요. 실제로 최고의 시각디자인 대학에 입학하는 것까지는 계획대로 해냈습니다.
단, 한달만에 그만둔 것을 빼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