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간쉬 워밍업 루틴
므노질 브라스 (Mnozil Brass)의 연주자이자 독특한 디자인의 간쉬혼으로도 알려진 토마스 간쉬 (Thomas Gansch)의 웜업 루틴 진행입니다. 마스터 클라스나 레슨 영상들을 보면, 예전 조이 타텔의 경우에도 보이듯, 강연 도중에 참관하러 온 대중/학생들과 함께 하나씩 밟아가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이런 과정을 뭐라고 해야할지 단어가 좀 애매하네요.
주법과 암부셔 등에 관련하여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을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텅잉에 관련지어 얘기한 적도 있지요. 이 토마스 간쉬가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 소재한 'JAM Music Labs' 사립음대에 출강하게 되면서 교육영상을 찍었는데, 여기서 선보이는 워밍업 두가지가 이런 부분들을 참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잠깐 소개할까 합니다.
#1. 유연성 (Flexibility)
1분 부터 보시면 될 듯 합니다. 짧은 영상이긴 하지만...^^
나팔에 처음 입문하고 나서 걸음마(?) 과정을 뗀 분들이라면 1옥 솔과 2옥 도 정도는 그래도 자신있게 낼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같은 솔-도 라도 이 정도 수준에서 소화가 가능하려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유연성 연습은 안해버릇 하다보니 이 속도는 못내겠더군요 ㅜㅠ 해보니 70~80% 정도 선에서 흉내나마 내는 정도인데... 조금씩 다져볼 생각입니다.)
항상 언급하지만 이 유연성을 '입술의 유연성'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어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입술이 얼마나 적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를 나타내는 거라서... 뭐랄까요, 마땅한 단어가 없어서 마지못해 선택된 용어라고나 할까요. '유연성을 갖췄다' 는 것은, 의식적으로 입술을 막 어떻게 해서 소리를 조작해 내는 것이 아니라, 작고 미세한 변화에도 입술이 바로 반응해줄 수 있다, 라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입술구멍 주변이 릴랙스된 상태일수록 가능한 것이고 (힘이 들어간다는 것은 즉 그만큼 단단하고 경직된다는 것이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입술을 의식해서 뭔가를 하는게 아니라, 역으로 입술 쪽에서는 생각과 힘을 빼고 최대한 내버려 둬야 하지요. 그런데 '분다' 는 생각이 자꾸 이걸 가로막으니 어려운 거고... 😂 (사실 '바람'이란 단어도 '유연성' 만큼이나 애매한 단어 선택입니다. 보통 서양권에서는 '공기' 내지는 '기류 (공기의 흐름)' 같은, 수동적인 단어들을 쓸 때가 많은데...)
"입술은 알아서 떨리는 거다" 라는 말을 곧잘 되새기는데, 이 '알아서 떨리는 상태' 를 가만히 두고 유지하는 것 → '유연성' 입니다. 즉 최대한 이 부드러운 상태의 세팅은 그대로 두면서 + 입술의 조작이 아닌 다른 요소들로 컨트롤 하고, 입술은 그 컨트롤을 그대로 받아서 반응해주는 상태가 '유연성이 활성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 봐도 놀라운 클로드 고든의 유연성 시범
이 연습을 위해 토마스 간쉬 본인이 언급하는 좋은 팁들은, '가급적이면 일관된 한 줄기의 바람으로, 주욱 뻗어서 소리와 바로 이어지듯이', 그리고 '항상 인터벌의 고음 쪽에 맞춘 포지션을 유지하며, 컨트롤은 구강 내 공간을 이용해서 (휘파람이나 '오'-'이' 발음 등)' 입니다.
#2. 세미 스타카토성(性) 싱글텅잉으로 주욱 불기
16분음표로 한 음을 두마디 씩 부는... 이것도 어찌 보면 굉장히 기초적인 연습인데, 간쉬 왈 "그냥 하면 너무 심심하니까" 랜덤하게 어떤 음들은 변박으로 액센트를 넣거나, 위아래 도약을 끼워 넣은 연습입니다. 1번 유연성 연습도 그렇지만 템포가 얼추 100 bpm 정도 되는데, 초보 분들이시라면 이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난관일 수 있습니다.
아티큘레이션에 대해서 토마스 간쉬가 하는 말은 '바람을 막으면서 땃 땃 땃 땃 하는 게 아니라, 바람길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다 다 다 다 하고 간결하게만 끊어준다' 라고 표현하는데(※), 이 발음이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디귿(ㄷ) 발음이긴 한데 좀 쎈 / 딱딱한 디귿이에요. 쌍디귿(ㄸ)과 중간 정도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세미 스타카토성' 이라 적긴 했지만... 직접 듣고 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전에 서울 선생님께서 '텅잉은 물을 틀어놓고 (=바람), 칼로 그 순간만 자르듯이 하는 거다'라는 요지로 말씀하신 것이 생각 나네요.
토마스 간쉬는 항상 느껴지는 특유의 묘한 아우라가 인상적이었는데, 이 교습 영상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뭐랄까... 참 무자비한 사람이구나 싶어서 무섭기까지 하더군요. '양들의 침묵' 시리즈의 한니발 렉터 교수같달까...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편히 웃으면서, 상대방에게 '당연하듯' 요구하는 수준이 무지막지하구나 싶더라구요. 서양음악의 본고장 격인 오스트리아에서 음대까지 올 학생들이면 수준이 이 정도 쯤은 돼야 하는건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좋은 방식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원래 교육적인 측면으로 볼 때, 배우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부하(스트레스)는 필요하거든요. 너무 쉬우면 배우는 게 없고, 너무 어려워도 (감당이 안 돼서) 배울 수 있는게 없지만, 적어도 보편적으로 보이는 교습 영상들 수준보다는 하나 더 윗단계의 허들을 제시하기 때문에 좋은 과제가 될 수 있겠구나 싶어요.
무엇보다도, 빌 아담 학파에서 강조하는 '온전히 몰두하면 몸은 알아서 기능한다'라는 차원에서 좋은 강습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이 영상들을 처음 발견했을 때 가볍게 따라해 보려다가, 생각보다 난해하길래 '... 다음에 시간 있을 때 하자ㅡ.ㅡ;;' 하고 넘어갔던 것이거든요. 워밍업 루틴이라고는 하지만 간쉬의 리드를 따라가려면 귀를 쫑긋 세우고 온전히 집중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돌려보고, 세어보고, 확인도 해 보면서요.
왜냐면 음악은 커뮤니케이션이잖아... 듣는 것은 핵심적인 부분이니까.
- 토마스 간쉬 (영상 #2 - 1:06)
때문에 ~이번 포스팅 용으로 위의 루틴들은 채보해 두긴 했습니다만~ 가급적이면 아래의 PDF 악보는 최대한 보지 않고 직접 몰두해서 따라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문제풀이를 하는데 답안지를 보면서 베껴쓰면 의미가 없잖아요? 🙂
요건 문제집의 답안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