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마하기/워밍업과 짧은 루틴

워밍업에 대한 단상 - 2017.02

J.5 2017. 2. 7. 07:42

트럼펫에 있어서 실력을 논할 수 있는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일단 '음악'에 대한 실력을 떨어트려 놓고 보면 결국은 기초들이 제대로 되어 있느냐이다. 그것은 '4옥 이상의 음역대'나 '몇 시간을 연주해도 지치지 않는 주력'같은 초인적인 것들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맞는 소리를 맞는 타이밍에 낼 수 있느냐 같은, 아주 기초적인 것들로 내려간다. 80 bpm 으로 16분음표에 맞추어서 '도레미파솔파미레도' 4번 반복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가? 박자와 음정에 맞춰서, 나아가 원하는 텅잉과 음색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12조마다 이 5음 스케일 반복을 두 옥타브씩 채울 수 있는가? 나는 아직 한참 모자란다. 요컨데 트럼펫이 하기 어려운 악기라는 건, 음악 이전에 소리 자체를 만드는 것의 문제이다. 


이것은 금관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같은 처지인데, 심지어 트럼펫은 금관들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악기들보다도 '악기 연습'과 '곡 연습' 간의 간극이 굉장히 크다. 곡 연습을 제외하고서는 사실 모든 연습이 기초연습이자 워밍업이라고 해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조이 타텔의 워크샵을 보면 워밍업이라고 가장 처음 하는 것이 트럼펫의 공식 최저음인 0옥 F# 부터 위쪽의 3옥 F# 까지 부는 정신나간 짓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워밍업'이라고 구분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이 바빠서 나팔을 자주 불지 못하는 와중에 다시금 나팔을 좀 불어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서 한 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워밍업의 근본적인 개념은 아투로 산도발이 위의 워밍업 영상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데, 설령 루틴은 정해진 것이 없더라도, 대원칙은 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연결되는, '트럼펫 모드'로 들어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그냥 바람만 불면 알아서 소리가 나오도록 하는 것, 그리고 맞는 호흡을 찾아서 거기에 흐름을 맞추는 것인데, 실질적으로는 이 수순이 어느 정도 끝나면 워밍업 단계는 대략 마쳤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정도'나 '대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후에도 꾸준히 이것을 유지하는 데에 신경을 써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워밍업 루틴 예시 몇 가지: 그냥 한 음 씩 부드럽게 부는 것 / 립슬러와 립벤딩 / 페달 톤 등.


내가 기억하는, 맞는 호흡을 찾는 데에 도움을 주는 팁들은 얼추 스무 가지 정도는 된다. 그때 그때 내 상태에 맞는 녀석을 골라서 쓰면 되는데, 내가 고른다기 보다는 워밍업 과정에서 내 상태에 맞는 녀석들이 저절로 떠오른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호흡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가 보기엔 이미 맞는 호흡이 몸에 완전히 익은 복받은 (혹은 그만큼 노력한) 분들이 하는 이야기다. 나같은 경우는 반대로 호흡이 잡혔다는 느낌만 들면 나머지는 전부 다 알아서 잘 풀린다. 크레이그 모리스가 워크샵에서 "아티큘레이션에 문제가 있다는 분들, 내가 장담하건대 십중팔구는 소리내는 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거다."라고 이야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지 싶다. (지금 와서 다시 보니, 요즘 연습하는 것들이 정확히 저기서 이야기한 구분법에 따르고 있는 점에 소오름이...)


쉬는 시간은 5분 남짓을 벗어나지 않는 편이 좋다

트럼펫은 기본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악기가 아니라 "하면서 스스로 깨닫는" 악기이다. (물론 옆에서 진단하고 가이드해줄 스승은 필요하다) 페이스 조절도 본인이 알아서 할 문제이지만, 도중에 잠깐 잠깐씩 쉬어가는 휴식 시간은 ~ 특히나 워밍업 단계에서는 ~ 5분 전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 워밍업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또 다른 중요한 것은 부드럽게 풀린 입술, 그리고 입술 주변 근육들이 자리를 잘 잡은 상태를 만드는 것인데, 연습 초반에 너무 오래 쉬어버리면 이것들이 다 어중간하게 돌아가버린다. 물론 주력을 집중적으로 키운다거나, 그 날의 여유, 혹은 특정일에 있을 공연을 대비하는 등, 총 연습에서 얼마나 쉬고 말고는 본인이 알아서 할 문제다. 찰스 라자루스 같은 경우는 큰 공연이 있으면 쉬는 시간들을 건너뛰고 두번 연달아 할 수 있도록 대비한다는데... 참고로 이 분은 연습을 짧게 나눠서 자주 하는 쪽을 선호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전공생이나 프로가 아닌 다음에야 이렇게 하기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 워밍업 단계에서만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을 좀 크게 나누는 경우, 이후에는 분 만큼 쉬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2017.05.22)


무조건 천천히

"무조건 천천히", 이 말은 진리이다. 특히 극초반 워밍업 단계에서 "소리를 내는 것"에 급급하면 입술에 과하게 힘을 넣는 등, 근본적인 워밍업의 목적과는 상반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소리가 제대로 안 나더라도 그냥 부드럽게 숨을 불면서 호흡과 자세 등의 맞는 세팅을 찾아가야 한다. 소리는 알아서 따라오게 되어있다. 긴장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정확히 파악하라.


곡 연습도 마찬가지여서, 누구였는지 기억은 가물하지만, 프로들끼리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데 어느 날 연습실 앞을 지나는데 방 안의 연주자가 무슨 곡인지 모를 정도로 한 음 한 음 나팔을 불고 있더란다. 한참 있다가 다시 와보니 그제서야 그 곡이 어떤 곡인지 알 수 있었다고 하는데, 처음엔 잘 안되는 곡이더라도 처리가 되는 수준까지 속도를 낮춘 다음에 거기서 아주 조금씩 속도를 올려나가면서 마스터하는 방식으로 하면 정복하지 못할 것이 없다. 단, 여기에는 전제가 필요한 데, 연습하는 부분을 완벽하게 정리할 것과, 점진적으로는 원하는 속도까지 도달하는 것, 그리고 한 번 정한 속도에는 감으로 대충 하지 말고 메트로놈 등을 이용하여 정확하게 따를 것이다. 음정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기준은 필요하다.



박자와 음정, 무엇보다 '음악적으로'

선생님은 '완벽한 처리'를 이야기하는데 도대체 그 '완벽'의 기준을 어디다 둘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한동안 되뇌었었다. 그리고 '표현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이전에, 적어도 연습할 때에 그 기준은 어디다 두어야 하는지, 내가 내린 답변은 이거다: 지금 내가 불고 있는 이 소리가 음악의 일부분으로 쓰일 수 있을까? 남이 이 소리를 지금 듣고 있으면, 아니면 지금 내 연주를 똑 떼어다가 반주에 맞춰 집어넣으면, 이게 말이 되는 '음악'으로 들릴까?


"음악적으로 모든 것을 연주하라" 라는 이야기는 예전에 번역했던 '주력과 효율' 영상에서도 그렇고, 아마도 전세계의 대가들이 가장 자주 강조하는 부분일 것이다. 


트럼펫을 연습함에 있어서 가장 크게 깨우침을 얻었던 것 중의 하나는, 내가 내고자 하는 소리를 내면서 연습하지 않는 이상, 단순히 오래 앉아서 계속 반복한답시고 그 부분이 절대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 생각 없이 "하다 보면 좋아질거야" 라는 따위의 사고는, 적어도 트럼펫 연습에 있어서는 완전 꽝이다. 


'약점'을 능동적으로 공략하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 불가에서 지혜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 하였다. 정확하고 엄격한 자기 모니터링을 하고 스스로가 어떠한지 알고 인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윈튼 마살리스가 어릴 적에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이야기하는 영상을 보고 한동안 화두가 되었었는데, 후반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결국 연습이란 건 직접 해야만 하는 거에요. 제가 한 6살부터 12살 때 까지는, 여러 선생님들한테 가 본 다음에 집에 오면 아버지한테 "별로 가르쳐준 게 없어요. 잘 하려면 연습을 해야 한다고 그러는데, 연습해야 한다는 건 저도 알고 있는 건데 그럼 선생님은 필요 없는거 아니에요?" 라고 얘기하곤 했죠.


하지만 12살 쯤 됐을 때에, 결국엔 체계적으로 매일 연주를 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검토하는 것, 그것이 더 나은 음악가가 되게 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말이죠. 그리고 연습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시작하고 나서는, 발전하기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이경규 옹이 김제동에게 이야기했듯이, 한계는 인정하는 순간 한계가 아니다.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탐구하고 또 집중적으로 공략하라.


튜너와 메트로놈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최고의 단짝, 튜너와 메트로놈. 요즘에는 스마트폰 앱으로도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꼭 따로 들고 다닐 필요는 적어졌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녀석들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그 기계적 느낌이 영 껄끄럽다. 더욱 '음악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대안은 없을까? 


- 8notes.com 의 메트로놈 (바로가기)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온라인 메트로놈인데, 사용해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분명 정확한 박자를 세어 주는 똑같은 기능인데도, 드럼 비트를 넣어주는 것 하나 만으로도 이렇게 느낌이 다르다니! 원의 하부에서 드럼 스타일을 고르고 원하는 속도로 작동시킬 수 있다. 멈춰 있는 상태에서 스페이스바를 원하는 박자에 맞춰서 누르면 자동으로 그 박자에 맞추어서 시작하기도 한다. 개념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닌데도 실제로 해보고 나면 그 차이에 놀랄 것이다. 단점으로는 아무래도 단순한 신호가 아니라 샘플을 반복적으로 돌리는 것이어서 그런지, 정기적으로 잠깐씩 박자가 끊긴다는 점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역시 제대로 된 연습공간이 필요하다는 점. 찾아보면 큐베이스, iRealB 등의 음악 관련 프로그램이나 앱 등에서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 탐부라(탐푸라) / 슈르티(Shruti) 박스 / 드론

위의 잉그리드 젠슨 영상에서 소개되는 그것이다. 영상에서 서술한대로, 바늘이 어디로 가는지 눈으로 쫓는 것보다 훨씬 음악적이고, 무엇보다 귀로 들으면서 맞추는 훈련이 되어서 좋다. 또 한 가지 큰 장점은 자유롭게 명상하듯이 즉흥연주를 이리저리 시도해볼 수 있다는 점. 단점은 귀가 이미 날카로운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 음정이 어느 정도나 잘 맞고 있는지 알기가 난해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름이 (안그래도 '드론'은 이제 날아다니는 무인비행체로 대부분 인식한다) 딱히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점 정도...? 



원래는 중앙/남부 아시아의 전통악기(탐부라 혹은 탐푸라)로 알려져 있지만, 요새는 첼로 등의 다른 소리로도 비슷한 것들이 나와있다. 원하는 조(key)를 검색어에 같이 넣으면 좀 더 찾기가 쉬울 것. 기술적으로 복잡한 것은 아닌 듯 하니, 아마 음원도 잘 찾아보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행복한(?) 연습 / 연주 되시길!